생각들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아질 수 있다는 어디까지 내려가는 건가 싶다가도어느새 다정함 앞에서는뭐든 다시좋아지기 마련이다. 어려움이 어려움을 부르고멀어짐이 멀어짐을 부르고조바심이 조바심을 부른다. 몸도 마음도 관계도 감정도좋아질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혹은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결국 좋아진다고생각한 그런새해의 첫 달 저마다의 같은 방향의 세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세계에서 산다.고립된 저마다의 세계를 가꾸어 더더욱 고립된다.각자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해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모든 세계의 방위가 같다면각자의 세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같은 방향의 함성은 큰 메아리를 만든다.그 사실을 오늘 알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다시 만난 세계는 오랜만에 반가운 순수한 환희였다. 고개 위의 눈 눈이 오면 바닥의 세상은 덮여 숨겨지지만고개 위의 세상은 되려 잘 보이게 된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나 싶은 전깃줄들이 그러하고나뭇가지들의 얽힌 모습도 선명히 드러난다. 눈온 뒤엔 새들의 둥지를 발견하기도 좋다.여름 내 새끼를 키우던 빈집 위에 눈이 쌓여 나무 위에 유난히 두툼한 눈 뭉치가 도드라진다. 눈길 위 사람들은미끄러지지 않으려 바닥을 살피며 걷는다.겁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보면서 걷는다.여유가 있다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눈이 주는 새로운(거의 유일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Replay 2024 음악 어플로 애플뮤직을 사용하는 나(앨범 쪼개고 뮤지션 이름 한글이랑 영어로 쪼개고 혼돈의 장이지만 앨범 단위의 큐레이션의 참맛 잃지 못해)애플뮤직에선 한 해가 마무리될 시즌에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으로 개별화된 플레이리스트를 짜 준다.올 해의 리스트가 나왔길래 확인해 보니 한 해 동안 무엇에 꽂혀 있었는지 투명한 내가 보인다.첫 곡인걸로 보아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Peace Sign인 것 같은데 너무 의외라 놀랐다 이 아저시들 내한 온다고 들떴던 건 사실이다만 이걸 제일 많이 들었을 줄이야 기분 상 신보보다는 [Nowhere] 앨범을 더 들었던 것 같은데 요상하다딱히 엄청 좋아하는 곡은 아녔다만신이 나니깐 여기저기 껴넣어 들었었나 보다.두 번째 곡은 The world's biggest pav.. 물에 빠진 새앙쥐가 되어선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던 원두막 아래의 40분 남짓 첫 번째 그룹은 할머니 3인당 얘기를 하며 감을 깎아 드셨다.비를 맞아도 된다는 쿨한 할머니, 비맞으면 어쩌냐는 걱정스런 할머니,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빨간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어서 빨간 옷을 골랐는데 하필 비를 피할 모자가 달리지 않은 옷이라 아쉽다는 귀여운 할머니 쿨한 할머니는 당신 드시려던 감의 반쪽을 내게 주셨다할머니 되면 힘드니까, 밖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나든 친절하게 대해 달라던 우리 외할머니의 말이 기억나"어머 감사합니다~!"를 한껏 미소지으며 말했지만쿨한 할머니는 내 얼굴도 안보고 감만 건낸 채 고개를 훽 돌렸다.그러더니만 잠시 뒤껍질 남아 있으면 마저 깎으라며 노룩패스로 칼을 건네 주셨다."감사합니다. 감이 너무 맛있어요!"역시 .. 사랑으로 용서하기 사랑을 통한 예수의 용서란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니라고 한다.깊은 뉘우침으로 그에게 죄를 벌한다.죄지은 자는 뉘우침으로 고통받고 충분히 벌받는다. 그러나 죄를 당한 자는 그를 용서해야만 하는 걸까용서의 주체는 누가 정하는가, 과연 누구에게 용서할 권리가 있는가 곤경한 상황에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면죄를 당한 자의 곤경함이 또 죄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죄를 당한 자도 고통 속에 사함받고 용서를 빌면 되는가아니지, 용서를 빌어야 하는가? 그 안에 사랑의 의미는 아직 남아 있는지그것이 사랑이 맞다고 할 수 있는지끝없는 의문이 이어질 뿐이다. 복수를 주제로 삼는 수많은 문학과 영화들 그 인물들의 마음이 문득 아득히 헤아려진다. 알마티의 새들 2024년 9월 초,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새를 정리해 본다. 1.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인도구관조) 카작에서 가장 처음 본 새이다. 우리에겐 낯선 비주얼이라 와 멋진 새를 발견했다! 라고 기뻐했었지만며칠 지내보니 우리나라의 비둘기나 참새급의 새였다. 길바닥에도, 덤불에도, 나무 위에도, 건물 창턱에도 그득그득했다. 20 cm 정도 되는 크기에 눈 주위에는 부리와 같은 색의 귀여운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고 이름처럼 검은 머리에 갈색 몸통을 가졌다. 예쁜 소리를 낸다. 쪼롱쪼롱 쪼쪼쪼쪼 검색을 해보았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미조(길잃은 새)로 몇 번 관찰된 적이 있다고 한다.적응력 킹으로, 텃세 의식이 강해 한번 터 잡았다간 자생종을 괴롭히는 못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고.외지인인 내 눈엔 그저 귀엽고 소.. 엄마와 카작을 "쉬는 동안 어딜 다녀올까 해. 카자흐스탄이 생각보다 안전하다는데, 엄마 같이 갈래?" "엄마는 무조건 좋아!" 이 두 마디의 대화로 엄마와의 생에 첫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출발 전엔 빠른 결정이 후회스러웠다. 엄마가 어떡하면 편하게 아프지 않게 다닐 수 있을지 어떤 호텔이 괜찮은지, 어떤 투어가 덜 힘들지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내리 번역하며 고민하다보면 그 길던 집에서의 하루가 후딱 가곤 했고 두통이 남았다. 전전긍긍의 날들을 뒤로 하고 알마티행 비행기 평소 비행기에선 쓰러져 잠드는 편인데도 공항 도착 이후의 과정을 한밤중 어찌 스무스하게 수행할지를 고심하다보니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1단계를 수행하기도 전에 시련이 찾아왔다. 수하물이 나오지 않았다. 몇 십분을 동동거리다 옆 레.. 제주시 조천읍 1-1머리 위로 제비들이 나다녔다. 내용도 모르고 제비가 그려진 책을 한 권 샀다.1-2깜깜한 관목 터널을 지나 주황색 코스모스 들을 지났다. 기척 없는 긴장 아래 모습을 드러낸 아기 노루는 나보다 더 긴장한 듯 보여 괜시리 미안했다.뺙뺙 소리를 향해 쌍안경을 들이대면 강렬한 눈빛의 유조가 나뭇가지에 턱 걸려 있었다. 1-3 잠시간 낙조를 기다렸다. 빽빽한 숲의 작은 틈은 바닥에 황금색 무늬를 그렸다. 1-4술 한 병에 현지인에게 여행자임을 들켰다.만취엔딩. 남은 일정 동안 그 술은 결코 마시지 않았다. 2-1바다에 들어가 보자. 발에 닿는 고운 모래가 찬 숨을 덮어준다. 투명한 옥색빛의 물이 발목에서 다리에서 배에서 가슴에서 목에서 턱끝까지 서서히 오를 때발목과 다리와 배와 가슴과 목과 턱끝에 투명.. 동박새가어쩌구 급작스럽게 제주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편치 못했다. 뒤에서는 내 허리를 쿡쿡 찌르고 옆자리 사람은 창가 자리인 내 앞으로 손과 핸드폰을 뻗으며 창밖 사진을 찍어 댔다. 그는 왜 그랬을까 생각한다. 창밖 풍경은 경계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면이 없다면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나 보다. 사람들은 경계 없음을 갈망한다. 하늘이 없었으면 하기에 하늘을 날고파 하고 바다깊은 곳이 없었으면 하기에 바다를 헤엄치고자 한다. 갈망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못한다. 신경쓰지 않고 담고자 한다. 우리에겐 땅이 있다. 땅이 있기에 땅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하늘과 바다는 우리의 기준이 아니다. 하늘과 바다을 터전으로 삼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찾으러 다닌다. 기준이 아닌 것을 나의 기준으로 삼고 싶어 ..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