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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알마티의 새들

2024년 9월 초,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새를 정리해 본다. 

 

1.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인도구관조)

 

카작에서 가장 처음 본 새이다. 

우리에겐 낯선 비주얼이라 와 멋진 새를 발견했다! 라고 기뻐했었지만

며칠 지내보니 우리나라의 비둘기나 참새급의 새였다. 

길바닥에도, 덤불에도, 나무 위에도, 건물 창턱에도 그득그득했다. 

 

20 cm 정도 되는 크기에 눈 주위에는 부리와 같은 색의 귀여운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고 

이름처럼 검은 머리에 갈색 몸통을 가졌다. 

예쁜 소리를 낸다. 쪼롱쪼롱 쪼쪼쪼쪼

 

검색을 해보았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미조(길잃은 새)로 몇 번 관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적응력 킹으로, 텃세 의식이 강해  한번 터 잡았다간 자생종을 괴롭히는 못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고.

외지인인 내 눈엔 그저 귀엽고 소중한 쪼롱이였다. 

이렇게 예쁜데 현지인들은 귀찮은 비둘기같은 거겠지 생각하면 외모도 다가 아니란 생각에 우습다.

외모도 행동거지도 모두 갖춰야만 끝끝내 사랑받을 수 있으리.

우리 쪼롱이 많이 보고싶다

 

 

2. 이집트대머리수리 

 

아씨고원에 올라 뭐라도 보겠단 일념 하에 열심히 고개를 돌리다가 발견한 멋진 독수리다. 

들판 근처를 낮게 비행하다가 돌 위에 앉아 쉬기도 했다. 

 

이 친구를 발견하고 Merlin을 이용해서 무슨 새인지를 파악하고 나니 기분이 날 듯 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자유롭게 날며 먹이활동 하는 독수리를 찾고 동정을 하다니요

내가 여행을 왔구나. 라는 마음과 함께 탐조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와 우와 내뱉으며 관찰하다 보니 근처에 있던 러시아어권 관광객들이 콘도르 라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친구는 콘도르는 아니다.

콘도르는 남아메리카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맹금류이고 이집트대머리수리는 벌쳐 - 즉 독수리이다.

콘도르과 와 수리과 로 엄연히 다른 과의 동물... 이라는 토막상식 

 

사진을 찍어보긴 했다만 착한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무엇인지라 외부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대체한다.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비록 한 마리였지만

 

 

3. 붉은망토장미방울새 암컷

 

호숫가를 향하는 숲길에서 만났다.  

통통하고 화려한 무늬를 가진 갈색 새였다. 

잠시 관찰한 뒤 그대로 날아가 버렸지만 곧바로 동정하여 어떤 친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어로는 Red-mantled Rosefinch라고 한다.

한국어 이름은 붉은망토장미방울새, 너무나도 귀엽다.

내가 본 친구는 붉은망토나 장미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런고 하니 내가 본 친구는 암컷이었다. 

수컷은 어여쁜 분홍빛을 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양진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 중 특히 새들은 수컷이 상당히 화려하고 암컷은 수수한 편이다. 

인간만 반대인 듯하다. 

수컷 새들이 화려한 이유는 대개 번식을 하기 위함이다.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함이다. 

인간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선택받아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외모를 꾸미기 보다는 재력을 키우는 것 같다.  

(물론 잘생긴 남자들은 알아서 잘 선택받는다. 이건 남녀불문 뭐 차치하자.)

인간 세상에서 자본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크지 않다면, 모두가 몸 누일 집 걱정 없고 먹을 밥 걱정 없다면 남자들이 외모를 가꾸게 될까? 

모를 일이다.  

암컷. 내가 본 친구는 위 사진보다 좀 더 통통했다. 털을 부풀리고 있었나 보다.
참고용으로 첨부하는 수컷. 분홍빛이 아주 사랑스럽다.

 

 

4. 알락딱새 번식깃 수컷

 

이 친구도 붉은망토장미방울새와 마찬가지로 숲길에서 마주쳤다. 

작은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영어 이름은 european pied flycatcher

우리나라 새들 중 '알락'이라는 말이 붙은 새들이 주로 'pied'의 번역본인 것 같다.

알락이란 '본바탕에 다른 빛깔이나 점이 조금 섞인 모양이나 자취'라고 한다. 

어울리는 이름이다. 흰 통통한 배경에 검은 점과 무늬가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다. 

미간에 있는 하얀 점 두 개가 인상적인 친구이다.

 

 

5. 갈색목큰까마귀 

 

여러분은 알고 있었나요 까마귀는 crow이고 큰까마귀는 raven이라는 사실을 

카자흐스탄에서 본 까마귀들은 raven이었다. 

그 중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육안으로 느껴진 친구는 이 brown-necked raven, 갈색목큰까마귀였다. 

부리가 유난히 크고 머리쪽이 새까맣기보다는 갈색빛이 돌았다. 

 

알마티 시내에서 외곽으로 떨어진 관광지 - 협곡이나 고원 등 - 으로 가면 까마귀가 상당히 많았다. 

까악까악 거리는 건 모든 까마귀가 그러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 이름 잘 짓는다. 까마귀 까악 까마귀 까악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2013년 쿠바 바라데로에서 국립공원 투어 중 딱따구리를 발견했을 때 가이드가 나에게 한국어로 딱따구리가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당연스레 딱따구리라고 답했는데 그곳에 있던 관광객(모두 유럽인이었음) 및 가이드가 폭소를 터트렸었다. 

딱따구리가 딱딱거려서 딱따구리녜서 옛스 옛스 했던 기억이 난다. 

소리를 문자화 하는 것. 행동과 상황에 대한 의성어를 최대한 만들고 활용하는 것. 나아가 그를 사물의 이름으로 붙여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삶이 쉽게 풍성해지는 방법이 아닐 리 없다. 

 

황량한 배경과 잘 어울리는 까마귀 친구들

 

 

6. 유라시아까치

 

현지에서는 단지 여기 까치는 좀 더 꼬리가 길고 초록빛이 도는구나.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검색하다보니 우리나라 까치와 다른 까치라는 걸 알아냈다. 

카자흐스탄의 까치는 유라시아까치, 우리나라에 사는 까치는 동양까치라고 한다. 

이친구는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와 비둘기를 제외하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였다. 

 

뭐 생각없이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이긴 하다만

이런 점이 탐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평소에는 다 똑같아 보이거나, 신경도 쓰이지 않던 -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새들인데 

조금만 유의해서 살펴보면 다 다른 생명체들이고 다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새를 보기 시작하면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바뀐다.

삶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니 다들 해봐요 좋다니까?

그나저나 까치의 학명이 pica pica인걸 알고 있었는가? 피카츄와 까치의 관계성이 무엇일런지

이 정도가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본 (혹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새들이었다.  

그 외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 / 멧비둘기 / 알락할미새 / 까마귀 들도 많았다. 

 

알마티에는 유독 큰 나무가 많았고 분수도 많았다. 

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 새들도 좋아보였고

같이 간 엄마의 말에 의하면 새가 많아서 나도 좋아보였다고.

 

서로 서로 좋은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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