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7) 썸네일형 리스트형 루벤 외스툴른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삼각형은 안정적인 도형이다. 기울어도 원래 형태로 돌아온다 생태계의 먹이 관계를 피라미드 - 삼각형으로 표현하듯 우리는 당연히 삼각형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삼각형의 사회는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끝까지 삼각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젠더, 인종, 계급의 불평등 부의 분배와 사상 부의 축적과 도덕적 가치의 시소타기 뭐 이렇다 저렇다 할 이슈는 다 뒤집어 엎어 보았으나 수학적 진리를 바꿀 수는 없는걸 얘들아 정신차려라 삼각형은 볼록 삼각형 뿐이다. 오목 삼각형은 없다고요 슬픈가? 웃긴가? 글쎄 난 별 감정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키메라] 최근 이방인 소재의 영화가 많이 보인다. 어디서든 소속감을 얻기 힘든 요즘'공동체'라는 단어는 허상같기도 하다. 내가 이 곳의 주(인)공이 아닌 이방인인 것 같다는 생각,소속감이 희귀한 감정이 된 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이방인들은영화로 소설로 처지를 이해받으려 한다. [키메라]가 그러했다. 낯선 외양에 낮선 말씨를 쓰는 주인공은이탈리아라는 문화적 특수성과 가족적 가치가 발달한 곳에서 존재만으로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 이방인이다. (유독 키가 커서 더더욱이....) 낯선 곳과 자신을 이어주는 강력한 연결 고리를 잃어버린 절망 속그는 새로운 고리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차마 잇지 못한다.그는 키메라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키메라라 잇지 못할 것을 잇는다. 세상을 뒤집어 이승이 아닌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자 거의 싸우다시키 토론했고 참을 수 없는 울분에 상호 간 흔치 않은 데시벨이 오갔다. 건전하지만 격렬한 의견 나눔을 즐겨하는 이들은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와 관람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동 감독의 [우연과 상상]을 보고 참을 수 없는 하품의 연속으로 눈물을 열렬히 흘렸던 바 해당 영화 관람 시 걱정을 가득 안고 극장에 들어갔다만 9할 5푼쯤은 걱정대로 흘러갔고(왜이리 진행하지 진심인가? 싶을 정도였음)남은 5푼은 예상치 못하게 찡그러진 미간과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으악!)스크린과 옆자리 사람을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선도 악도 늘 존재한다. 그치만 그 존재하는 선도 악도, '정의되었기에' 선그어진다. 그 전까지는 그게 선인지 악인지 구분은 커녕선과 악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지도..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한국판 매드맥스, 악인 없는 악에 대한 이야기 라고 생각하며 감상을 마쳤는데 가만앉아 생각해 보니 악인이 뭔가 싶어졌다. 다들 본인 (맘이든 몸이든) 편할대로 행동한 것 같구만 선악을 가르는 잣대같은건 역시 있을 수가 없다 성무선악설이 맞긴 해 종교적 뉘앙스가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데 너무 빤히 보여 진짜 의도가 맞나 싶었다. 맞다면? 디스토피아의 구약성경이라 생각하니 재밌다 내가만든 사회~ 너를위해 세웠지! 구원은 없어~ 배고파도~ 여튼 답없는 상상의 시각화를 마주하니 삶을 멀리 봐야겠다 싶어졌다. 넓게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넓은 세상을 멀리 보는 시야에서 현명한 결정이 나올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기억 속 현대물리 서적의 한 페이지쯤 수록된 내용이 스크린에 두 시간쯤 펼쳐졌다. 잉크로 남는건 짧은 역사이지만 그 한 페이지를 남기기 위해선 수많은 이들의 고뇌, 정치적 협력과 시기, 어떤 이의 일생 전체가 필요했다. 더이상 쪼개지지 않을 것 같던 입자들이 쪼개졌다. 우리를 이루는 입자의 특성이 곧 우리의 특성이겠지 더이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마음도 역시 변한다. 입자가 쪼개지며 에너지가 나온다. 만들기 쉽진 않다만 입자끼리 합쳐지며 에너지가 나오기도 한다. 근데 쪼개지는 것보다는 합쳐지는 쪽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훨씬 크다. 우리도 그런 것 같다. 걱정이 따르지만,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그렇다고 믿고 싶다. 오펜하이머는 첫 강의에서 '빛은 입자면서 파동이다' 라는 기본 명제를 말한다.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죄없는 자는 죄를 사함 받고자 할수록 원죄에 얽히고 죄인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숨어 스스로 죄를 사하는 역설 세 번이 넘는, 네 번의 미안함 그를 진심으로 받아준 제니의 용서 그만으로 금자는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었을까 브레송이 떠오르는 빛의 미학과 화면과 소리의 오버랩이 전달하는 동시감각의 감탄 아름다움이 많은 걸 좌우한다는걸 또 한 번 느낀다.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트로윌 감독의 [가가린] 한때 처음이었던 것도 마지막이 된다 헤진 영광은 누더기를 입고 희망의 날갯짓도 필연적인 이해관계 앞에 너무 쉽게 한계에 닿는다 옮겨야만 하나 옮기기 싫은, 옮길 곳이 없는 삶 혹은 옮기고팠지만 뒤돌아봄이 남는 삶 우린 언제까지 지구의 네이티브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야말로 잠시 머물다 가는 지구의 외지인일지도 몰라 빙글빙글 도는 지구에서 멀미나지 않으려면 외지인들끼리 의지하며 살아야겠지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