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의 추천으로 [고고학]이라는 밴드의 '영원'을 우연히 접하고 난 뒤
한동안 그들의 Vol.4 앨범을 주구장창 들었었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채로움을 가진 고고학의 음악은
최근 어떤 밴드에서도 접하기 힘든 깊고 상쾌한 키보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서정적인 멜로디에는 한참의 토이 음악을 떠오르게 하는 노을빛이 묻어있고
추상적인 주제와 가사들은 재생이 끝난 뒤 한 번더 반복재생을 누르게끔 보챈다.
그렇게 반복재생하다보니 어느새 난 단독 공연을 예매하고 있었다.
공연은 애매한 화요일 저녁 합정에서 열렸다.
처음 보는 공연장 - 벨로주와 무신사개러지 사이에 있는 클럽온에어라는 곳이었는데
무대에 깔아놓은 카펫의 무늬와 색이 따뜻한 무드를 만드는 곳이었다.
공연은 어색하고 좋았다.
어색했다는 건... 연주자들도 너무 떨고 있었고 연주자들과 관객들 사이도 서먹했고
관객들이 내향인들만 모여 있던 건지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치는 것마저도 샤이해했다.
첫 곡이 끝나고 아무도 환호는커녕 박수도 치지 않아서 내가 젤먼저 치기 시작했다. 재밌는 점은 나도 내향인이다.
뭔놈의 어색한 키워드 토크 타임도 있었는데 내가 대신 답변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어색함은 정말 힘들고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공연과 연주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음원으로 들을 때는 채집해내지 못했던 고고학 음악의 디테일함이 드러났다.
물론 음원보다 빡센 편곡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정교하게 쌓는 사람들이었다.
네 명의 연주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니 그들의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기분 좋은 풍족함이다.
특히 [Rain]에서는 기타맨 범석님이 앞뒤로 기타를 끼고 있더만
잠시간에 기타를 바꾸어 연주를 하는(!!) 진기명기를 보였다.
Rain은 자꾸 추가되는 여러 대의 기타 소리가 흥미로운 곡인데
라이브로 1인 2기타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그들의 공연에 세션이 왕창 붙어 그 수많은 기타가 계속해서 쌓이는 장면을 실제로 연출할 수 있길 바라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곡 [환청] - [파도]는 연이어 연주되었다.
공연날 밤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 곡이 귓가에 맴돌길 바란다며 [환청]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의 바람처럼, 그 이상으로 다음 날까지 내내 들리고 들렸다.
이 곡의 매력은 후반부에 2분 여 진행되는 연주타임. 그걸 공간적으로 듣다 보니 정말 눈에 뭐가 보이는 듯했다.
환청을 너머 환각의 시간이었다.
[파도]는 파도같았다.
바다에 가면, 늘 파도를 마주하게 된다.
다 똑같은 파도인데 왠지 매번 그 감상은 다르다.
보기엔 같지만 내 맘속엔 다른 파도임이 자명해진다.
이 곡도 그랬다. 내게 익숙하지만 내게 처음인 파도같았다.
마지막 앵콜곡은 [Paradise]
'모든 근심 걱정들 잊어버리게 모여라' 라는 직접적인 가사들이
하얀 데이지 꽃밭의 배경 위로 쏟아지는 그시간은 거짓말같은 위로였다.
추상 속에서 상념을 홀로 헤아리는 것도 필요한 시간이지만
위로는 둥글게 모여 털어놓을 때 가장 효과적일 거다.
몰입의 한시간 반여였다.
집 가면서 고고학의 정보를 찾아보고, 인스타를 정독했다.
또 한 번 그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으며 몰입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찾아들을 새로운 뮤지션이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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