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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41015] 먼데이프로젝트 시즌7 : Our universe - 고고학 단독콘서트

애플뮤직의 추천으로 [고고학]이라는 밴드의 '영원'을 우연히 접하고 난 뒤

한동안 그들의 Vol.4 앨범을 주구장창 들었었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채로움을 가진 고고학의 음악은 

최근 어떤 밴드에서도 접하기 힘든 깊고 상쾌한 키보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서정적인 멜로디에는 한참의 토이 음악을 떠오르게 하는 노을빛이 묻어있고 

추상적인 주제와 가사들은 재생이 끝난 뒤 한 번더 반복재생을 누르게끔 보챈다. 

그렇게 반복재생하다보니 어느새 난 단독 공연을 예매하고 있었다. 

 

공연은 애매한 화요일 저녁 합정에서 열렸다.

처음 보는 공연장 - 벨로주와 무신사개러지 사이에 있는 클럽온에어라는 곳이었는데

무대에 깔아놓은 카펫의 무늬와 색이 따뜻한 무드를 만드는 곳이었다.

 

어쩌다 1열맨 뷰 좋았다. 붉은빛 공연장 내부
뭐 이런 굿즈들도 주셨는데 뭐에 쓸진 모르겠다....

 

공연은 어색하고 좋았다.

어색했다는 건... 연주자들도 너무 떨고 있었고 연주자들과 관객들 사이도 서먹했고

관객들이 내향인들만 모여 있던 건지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치는 것마저도 샤이해했다. 

첫 곡이 끝나고 아무도 환호는커녕 박수도 치지 않아서 내가 젤먼저 치기 시작했다. 재밌는 점은 나도 내향인이다.

뭔놈의 어색한 키워드 토크 타임도 있었는데 내가 대신 답변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어색함은 정말 힘들고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공연과 연주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음원으로 들을 때는 채집해내지 못했던 고고학 음악의 디테일함이 드러났다. 

물론 음원보다 빡센 편곡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정교하게 쌓는 사람들이었다. 

네 명의 연주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니 그들의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기분 좋은 풍족함이다.

 

선셋 아래 연주왕 고고학 4인 - 내 감상은요 키보드가 너무 좋았읍니다

 

특히 [Rain]에서는 기타맨 범석님이 앞뒤로 기타를 끼고 있더만 

잠시간에 기타를 바꾸어 연주를 하는(!!) 진기명기를 보였다. 

Rain은 자꾸 추가되는 여러 대의 기타 소리가 흥미로운 곡인데 

라이브로 1인 2기타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그들의 공연에 세션이 왕창 붙어 그 수많은 기타가 계속해서 쌓이는 장면을 실제로 연출할 수 있길 바라게 되었다. 

 

앞뒤로 투기타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곡 [환청] - [파도]는 연이어 연주되었다. 

공연날 밤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 곡이 귓가에 맴돌길 바란다며 [환청]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의 바람처럼, 그 이상으로 다음 날까지 내내 들리고 들렸다. 

이 곡의 매력은 후반부에 2분 여 진행되는 연주타임. 그걸 공간적으로 듣다 보니 정말 눈에 뭐가 보이는 듯했다.

환청을 너머 환각의 시간이었다. 

[파도]는 파도같았다. 

바다에 가면, 늘 파도를 마주하게 된다. 

다 똑같은 파도인데 왠지 매번 그 감상은 다르다.

보기엔 같지만 내 맘속엔 다른 파도임이 자명해진다.

이 곡도 그랬다. 내게 익숙하지만 내게 처음인 파도같았다. 

 

마지막 앵콜곡은 [Paradise]

'모든 근심 걱정들 잊어버리게 모여라' 라는 직접적인 가사들이 

하얀 데이지 꽃밭의 배경 위로 쏟아지는 그시간은 거짓말같은 위로였다.

추상 속에서 상념을 홀로 헤아리는 것도 필요한 시간이지만

위로는 둥글게 모여 털어놓을 때 가장 효과적일 거다. 

 

둥글게 모여봅시다 위로를 나누어 보아요

 

몰입의 한시간 반여였다. 

집 가면서 고고학의 정보를 찾아보고, 인스타를 정독했다.

또 한 번 그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으며 몰입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찾아들을 새로운 뮤지션이 하나 늘었다.

 

너무 꾸벅 해주셔서 나도 같이 꾸벅 하게 되었다

 

기타에 붙은 고고학 스티커가 예뻐서 한 장만 더. 꼿꼿한 포즈로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