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가장 더웠다.
존재론적 땀은 당연지사에다가
햇볕이 유난히 뜨거워서 온몸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것 같았다.
세이수미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왔기에 3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죽을 것 같았다.
게다가 사람도 많았다. 데이식스 공연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손목에 일요일 1일권 입장팔찌를 찬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팬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고, 평소 락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중년 여성 관람객도 왕왕 보였다.
데이식스 팬들이 페스티벌 첫 날인 금요일부터 일요일 펜스를 잡기 위해 입장 줄을 '자기들끼리' 서서 논란이 되었었는데
(대부분 페스티벌에서는 입장 줄을 며칠 전부터 서지 않는다. 아이돌 공연과는 다른 문화)
와 어떤 크기의 사랑이면 이 쪄죽는 여름에 2박 3일 동안 기다릴 수 있는 건지
그들이 한심스러워 보이기 보다는 대단해 보일 뿐이었다.
내 삶에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랑을 모으면 그보다 큰 크기의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여튼 더위에 맞서 맥주 한 잔 들고 세이수미 공연을 보았다.
얼마 전 아시안팝에서도 봤었지만 또 봐도 최고로 즐거웠다.
특히 Rockaway Beach를 말아주셨는데 쟁글쟁글 지글지글 신나는 여름 그 자체였다.
쑤미언니는 시원해 보이는 하얀 치마를 입고 나와 연신 예~를 외쳐댔고
사람들은 평화롭고 신나게 어깨와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쎄이 쑤 미 공연은 늘 그렇다. 어느 계절에 어떤 상황에서 보아도 건강하다.

다음은 글렌체크
언제부터였을까 글렌체크가 이런 초대형 인기밴드가 된 것이
이 더위에도 메인 스테이지를 빼곡히 매운 인파가 대단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고, 비집고 들어가다간 이산화 탄소에 절여질 것만 같아서 뒤쪽에 있었더니
뿌려주는 물을 맞을 수 없어 그대로 더위에 쳐맞는 느낌이었다.
음악이 공연이 좋고 뭐시기고 결국 즐길 수 없어 친구와 의료쿨존으로 튀튀했다.
의료쿨존이 없었다면 잘생긴 데이식스 얼굴들도 못보고 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나갈 때 즈음 밥을 수령하러 가는데, 마지막 곡 60's Cardin 시작 전 타이거디스코가 등장했다.
언젠가부터 그가 없으면 글렌체크 공연이 허전하다.
타이거디스코의 율동은 참지 못하지
결국 발걸음을 돌려 떼무(떼창처럼 떼舞.. 이런 말 안쓰나)에 참여했다.
솔직히 이거 했으니 글렌체크 공연은 다 봤다고 퉁쳐도 무방하다.
글렌체크도 어지간하면 일 년에 한두번 씩은 꼭 보게 된다.
이제 국밥이 된 팀이고 페벌에서의 레퍼토리가 비슷하다보니
국밥과 함께 고인물이 되어버린 나같은 관객은 큰 감흥을 받기 어렵다.
공연 초반 이런 생각을 쌓고 있던 때 앞에 있던 관객이 이런 말을 했다.
"와 이 팀은 정말 여름같은 음악을 하네 너무 좋다!"
내가 익숙해진 것일 뿐 새로 접하는 이들에게는 아직 유효한 상쾌함이었던 거다.
그녀가 퍽 부러웠다. 타성에 젖은 나의 음악감상 루틴을 바짝 말려 디깅의 즐거움을 찾아봐야 겠다.
이후 밥을 먹고 쉬다가 이상은의 공연을 보러 갔다.
작년인가 DMZ에서 공연을 본 적 있는데,
당시 이런 젊은 관객층의 공연에 서 본적 없으셨(던 걸로 추정되)던 상은언니는
너희들 부모님이 너네 여기 철원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거 아니 / 너네 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아니 / 이 노래 나오고 한참 뒤에 태어난거 아니니 / 등의 엄마식 명언을 쏟아냈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멘트들이 좀 별로기도 했고 관객들의 (감상에 해가 될만큼 지멋대로들 노는) 애티튜드도 좋은 기억은 아니기에 크게 보고싶은 맘은 없었고
허나 동행인들이 보고 싶다기에 조금 같이 보다가 뒤쪽 잔디밭에 누워 쉬었다.
해가 너무 예쁘게 지고 있었다.

이맘때 송도달빛축제공원의 해질녘은 참 예쁘다.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이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은 충분히 황홀한 노을을 볼 수 있다.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를 배경 삼아 보랏빛에서 진한 주황빛으로 이어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이 많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노을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이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년에도 출석하겠지

다음으론 데이식스를 보러 갔다.
펜타 10년차 이렇게 잘생긴 얼굴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분명히 시야에 무대가 잘 보였으나, 얼빡의 은혜를 받고파 자꾸만 스크린으로 시선이 갔다.
영케이씨가 아주 잘생겼더라. 갈매기를 닮았다.
갈매기를 닮은 영케이씨 노래도 잘 하더라
멤버 4명 중 3명이 노래를 부르는데, 내겐 가장 취향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표정이나 멘트나 타고난 끼쟁이였다.
나중에 펜타포트 비하인드 자컨 나오면 챙겨봐야지 다짐했다.

얼굴 말고 공연은 뭐 그냥 그랬다.
연주는 빠지는 건 없으나 매력은 없달까 제 할 몫들만 하는 느낌이었고 (기타가 좀 더 풍성하면 좋겠어용)
보컬은 원필씨는 불안불안했으나 나머지 두 분은 잘 하는 것 같았고
곡들은 별로인건 아니었다만 잘 모르는 머글의 입장에서 하나같이 벅참을 유도하기 위한 떼창 구간이 있는 구조라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아!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나 '예뻤어'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곡인데 그 둘은 요상하게 다른 곡들보다 더 별로였다.
이어폰으로 들을 때가 라이브로 들을 때보다 더 차오르는 느낌인데 아주 요상하다 이유를 모르겠네

아이돌밴드(라는 표현은 팬들은 싫어하겠으나 비주얼 좋고 아이돌식 팬덤이 있는 밴드를 편의상 이리 칭하자.)는 칭찬하기 좋은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내내 연주를 하니까 노래를 하네 마네 가창력이 어떻네 이런 논란 일단 없을 거고
연주가 딸려도 비주얼 칭찬하면 되고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자체 작곡의 가능성이 높으니 내가 팬이라면 매번 매 공연마다 뽕이 넘쳐 흐를 듯
공연 감상이 이런 괜한 생각들로 이어져 덕질하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데이식스 팬들은 좋겠수
여튼 그렇게 데이식스 공연이 끝나고 잔나비를 좀 앞쪽서 보고파 이르게 대기했다.
앞쪽으로 전진하니 올해 덥긴 더웠는지 수많은 물대포의 흔적으로 바닥이 척척했다.

잔나비 시작 전, 갑자기 뭔 영상이 틀어지더니 펜타포트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크레딧마냥 올라갔다.
그리고선 내년의 펜타포트 20주년 공연 날짜를 공표했다.
"2025년 8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
희희 캘박 완료다.
잔나비 공연은 완벽했다. 촘촘히 짜여진 밀도높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어쩐지 더 멋있어진 최정훈씨는 무대 위에서 전보다 더 잘 날아다녔고
(더 멋있어진 이유는 이제야 밝혀졌다. 한지민씨라는 천사를 만나기 때문이었네...)
매번 똑같아 욕먹던 셋리스트를 확 바꾸어 지루할 틈도 없었다.
재작년의 멘트 논란(난 아직도 이게 왜 논란인지 모르것다. 그가 뭘 잘못했나요??)를 의식하는지 멘트도 거의 없이 공연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좋았다. 화면 효과 뿐만 아니라 일부 곡들에 가사를 띄어 주어 잔나비 특유의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들을 모두가 함께 따라부를 수 있었다.

저항 없이 질질 짜고 저항 없이 이빨 500개 보이며 웃었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이놈의 곡은 라이브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 언제보다 뜨거운 여름밤 나의 나날들을 돌아본다.
모두가 목청 높여 합창하다 보면 나의 나날은 우리의 나날이 되고 그 또한 다음 공연에서의 추억이 되겠지

멋있었다.
포크부터 프로그래시브까지 풍성한 장르 스펙트럼, 남녀노소의 공감을 사는 가사들, 반박 못할 무대 장악력까지
이정도면 욕하던 이들도 펜타 일요일 헤드로서의 잔나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혹자는 공연은 멋있었으나 대학 축제와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허나 대학 축제에서도 이런 공연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펜타 헤드로서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락스타가 맞다. 실로 합당한 무대였다.

이 날도 막차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자비한 더위와의 싸움, 단전에서 올라오는 환호성의 시간이 끝이 났다.
펜타 아닌 어떤 이유여야 뙤약볕에 3일 간 나다닐 수 있을까 싶다.
지난 날을 돌아보니 내년이 새롭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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