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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41011] 2024 숙명여대 작곡과 추계 작품 발표회 Soundflakes in Autumn

오늘은 좀 특별한 공연 후기를 작성한다. 

우연한 기회로 인연이 닿은 멋진 친구의 작품 발표회가 있었다.

친구의 초대를 받았을 때 꼭 가고 싶었고, 다녀 와 보니 꼭 다녀오길 잘 했다 싶었다. 

 

Soundflake 라는 표현이 어여쁘다.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의 범주를 따졌을 때

우리는 대부분 큰 공연장에서, 증명된 연주자들의, 대부분 수 백년은 더 된- 다수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 음악을 듣기 마련이다.

이 공연은 그 모든 일반적 경험들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젊은 창작자들의 시야가 돋보였다. 

곱디 고운 모래가 되지는 못한, 아직 조금은 거친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사장 같았다. 

유난히 석영 물질을 가득 품은 모래들은 눈부신 눈꽃송이들처럼 반짝였다. 

 

반짝이는 음악이 흐르던 숙연당의 무대

 

몇 가지 인상에 남는 곡들을 연주 순서대로 적어 본다. 

 

 

네 번째 곡이었던 박가예님의 [피아노와 바리톤을 위한 '별 헤는 밤']

사람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은 악기만으로 내는 소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울림을 잘 이끌어내는 선율이었다. 

완숙하지 않더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면 분명히 멋진 곡이 분명하다.

곡이 끝난 뒤에도 잔향이 남아 있었다.

 

다섯 번째 곡이었던 이지원님의 ['Craving' for violin and percussion]

바이올린과 퍼커션이라는 흔치 않은 조합의 곡이었다. 

우리의 갈망은 이 곡처럼 두서없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음색과 선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감상 내 언젠가 본 적 있던 오디오비주얼 공연이 생각났는데

재밌는 점은 그 공연은 철저한 디지털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실물 악기로 구현하는 음악'과 ' 컴퓨터로 구현하는 음악'

전자가 있기에 후자가 있지만 전자로부터 후자가 생각나는게 상당히 생소했다.

물론 후자로부터 전자가 생각나는 경우는 더 없을 듯 하고 

요새는 후자의 범람 때문에 전자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 관계성을 생각하다 보니 곡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일곱 번째 곡이었던 이유정님의 ['Nieve' for Cello and Piano]

이날의 공연에 간 이유 - 초대해 준 친구의 곡이었다. 

사심을 빼더라도 (안빠지더라도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가장 마음에 스며드는

가장 눈감고싶은 

가장 가장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음악이었다. 

듣는 내내 모리스 라벨의 '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가 떠올랐다. 

흰 눈이 내려 세상의 색이 몇 가지 상실된 겨울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추후 작곡가님께 듣고 보니 라벨이 활동하던 시기의 인상주의 화성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창작자의 의도와 나의 감상이 맞아떨어진 것도 짜릿한 경험이었고

이 음악으로부터 거장의 음악이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정말 이 친구가 작곡 역량을 넘치게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리뷰에 미처 다 올리지 못한 6인의 곡들도 모두 아름다웠다.

신진 작곡가들은 자신의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보법으로 영감의 표현을 밟고 있었다. 

모두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대중 음악의 홍수 속에서

묵묵히 클래시컬의 방식으로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고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때까지의 긴장감, 

곡이 끝난 후 감상자들을 향해 인사할 때의 벅참과 떨림과 감사함

그 모든 감정들이 내밀히 느껴져 더욱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다들 큰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다시한 번 박수를 보내요 작곡가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