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DMZ에서 힙스터 왕들에 둘러싸인 채 두려움을 겪었던 바
올 해는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아시안팝페스티벌에 가기로 결정했다.
올 해 처음으로 열리는 페스티벌인데,
이름처럼 아시아 (라고 말하고 다수 일본이라 읽는) 아티스트를 잔뜩 데려와서 화제가(물론 내 세계에서만이겠지) 되었다.
아시안팝페스티벌은 인천공항 코앞의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렸다.
어떻게 보면 접근성이 아주 안좋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접근성이 아주 좋은 위치...
적어도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개꿀딱지의 위치선정이지 않나 싶다
호텔 부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가본 적이 없어 어떠려나 싶었는데
자본의 달콤함에 취하는 이틀이었다
너! 무! 쾌적했다
더우면 에어컨 쐬러 (치열하지 않게) 가면 되고, 배고프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가면 되고, 배가 아프면 (내 방 문보다 두꺼운 문을 가진) 휴지와 클래식이 구비된 화장실에 가면 되고, 손이 찝찝하면 (무려 핸드워시까지 있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세면대에서 손을 닦으면 되는 거였다.
어려움이 없었다.
어려움이 없으니 낭만이 없었을까?
아니지 낭만은 잔디와 맥주와 라이브셋이 있으면 당연히 만들어진다.
더 쓰다간 소문 나서 내년에 사람이 많아질까 두려우니 이정도만 칭찬해야지
그나저나이나저나
공연 본 얘기를 남겨 보자.
봉제인간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맥주 한 잔을 들고 실내 스테이지로 입장
엘리펀트짐 공연서 짧게 봐서 아쉬웠던 그들의 공연 만족할만치 즐겼다.
역시 믿고 듣는 최고의 연주, 중간중간의 여유로운 멘트들도 좋았다.
예상 밖이 아님에도 들을 때마다 짜릿한 특유의 변주들에 전율이 흘렀다.
동행한 이는 봉제인간 공연을 처음 보고, 기대도 없었다는데
이번 페스티벌 최고의 공연 중 하나를 봉제인간으로 꼽았다.
올 해 마지막 한국에서의 공연일지도 모른다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은 CHS, 야외 스테이지였다.
능글거리는 멘트와 그루비한 음악에 흐느적거리게 춤을 추는 40분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뭐가 무슨 노랜지 구분이 안되는데 (미안합니다)
라이브로 즐길 땐 '아 이 노래다! 이때 이렇게 놀아야지!'라는 괜한 생각을 잊게 해줘서
그냥 음악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된다.
그후 잠시 밥좀 먹고 쉬다가 네버영비치를 봤다.
신나는 아자씨들... 뭔 일본 축제에서 아자씨들이 머리에 띠두르고 입을것 같은 가운을 맞춰입고 나오셨는데 거기에 '네바양 10주년 어쩌구' 라고 써있었다(고 한다)
음원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신나는 무대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놀아봅시다! 아싸 신난다이!!! 이런 느낌...
그치만 그 바이브가 30분 이상 지속되자 흥미를 잃게 되었고 (질리잖아요 솔직히)
끝의 10분여는 잔디에 누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메인 스테이지들을 벗어나 루빅 스테이지와 크로마 스테이지에 가봤다.
크로마 스테이지는 한마디로 럭셔리 클럽이었는데
비맞은 반바지에 맨발 샌들 차림으로 그런 곳에 들어가는게 너무 어색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사람은 없어서 휑하고... 근데 디제이는 무슨 하느님석같은데 위에 올라서 빵빵 음악을 틀고 있고...
모든 인지가 부조화되는 느낌이라 얼른 빠져나왔다.
아마 엄청 핫한 디제이가 아니고서야 그곳의 분위기를 살리기 어려웠을 것 같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튿날 키라라 무대에서는 넘 분위기 좋았다고..)
루빅 스테이지는 메인과 좀 떨어진 소공연장이었는데 공연장의 분위기가 고급졌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베뉴에 뒷편에는 분위기 좋은 바가 있고
천장의 벌집 모양의 조명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랑의 공연 중이었고 마침 '신의 놀이'를 연주 중이어서 한 곡 듣고 나왔다.
참... 멋진 음악인데 즐겁기가 어렵다.
좡좡 마음에 공명이 일기라도 하면 될텐데 이상하게 혼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냥 나와 맞지 않는 거겠지
이후 이디오테잎을 보러 왔다. 대체 불가한 보장된 즐거움
나는 디알님의 드러밍을 특히 좋아한다.
청순한 얼굴로 머리칼을 휘날리고 환하게 웃으며 파워드러밍하는 그의 모습이 전광판에 나오면 쾌감이 인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고 있자면 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춤을 추게 된다
이날 관객들이 어지간히 신이 났는지 뭔놈의 슬램을 곡 당 한 번씩은 하던데 (안지치나 안지겹나)
공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촬영하는 press 한 분이 거기 껴서 촬영을 하다가
신이 너무나도 난 나머지 촬영은 뒷전 사람들과 뒤엉켜서 씬나게 놀고 있었다.
슬램 후에도 그 여운에 못이겨서 모르는 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야단법석 즐기시던데
그 모습이 내겐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오래도록 기억될 장면, 순수 환희를 시각화하면 그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페트롤즈. 동행인의 최애픽이었다...만
거의 최악의 공연을 하고 갔다.
공연 시작부터 기타 소리가 안들리길래
분명 유우명한 기타리스튼데 왜 저렇게 셋팅을 했지 싶었다만
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고.. 사고였고... 그치만 그 사고를 수습할 스페어 기타는 없었고...
베이스 아저시만 발군의 역량을 뽐내고 (슬펐다)
기타 소리는 들리다 말다 해서 이도 저도 집중도 뭣도 안되는 공연이 내내 이어졌다.
팬들은 괜찮다는 듯 격려했다만
팬이 아닌 내 입장에서 뭐 이런 공연이 있나 싶었다.
심지어 크게 미안해하는 느낌도 아녔기에 더더욱...
(담날 몇몇 일본 아티스트들이 리허설을 충분히, 잘, 철저히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우연인지 혹은 이 사건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페트롤즈까지 끝나자 날이 추웠다.
실내 스테이지의 아낌없는 에어컨 공세에 그랬고... 비온 밤은 습한 공기에 더 춥게 느껴졌다.
애매한 허기에 동행인과 컵라면을 하나씩 떼려 속을 뎁힌 뒤
노파티포차오동을 보러 갔다.
음원서 듣던대로 멋있었다.
일렬로 선 멤버들이 거대한 조명과 연기 속에서 장엄한 연주를 하는데
이건 '기세'가 아니라 '기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잘 만들어진 라이브 영상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끝까지 보고픈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분명 너무 잘하는데 멋진데 최고인데 음악 자체가 너무 좋은데 라이브의 울림이 크지 않았다.
굳이 생각을 해 보자면 음원이 좋아서이지 않을까
음원이 라이브처럼 좋으니 라이브의 감동이 덜하다는? (궤변일지도?)
여튼 그렇게 공연을 절반 정도 본 뒤 빠져나왔다.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제공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끝까지 쾌적함) 인천 공항까지 온 뒤 숙소로 이동, 하루를 마무리했다.
쓰고 보니 뭔가 별안간 벅차오르는 덕후가 된 그런 스테이지는 없었다만
모든 무대에 고개가 흔들리고 허리춤이 흔들리는 건 역시나였고
올 해의 첫 페스티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저 즐거웠다
내 여름의 시작
가벼운 발걸음과 가벼운 궁둥이의 시작
여름의 예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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