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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토마스 레온치니의 [액체 세대의 삶]

책을 읽으며 나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의 세계를 여러 발자국 뒤에서 바라본 현명한 통찰을 좇아보니 

내 행동의 감정의 발로를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의 위로와 일부의 반성이 있었다.

 

'액체 세대'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정의한 80~00년대에 출생한 나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액체 세대는 변화를 흡수하고 계속해서 형태를 바꾼다.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아닌 소비하는 인간이다.

덕분에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간다.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빠르게 파괴된다. 꼭 맞는다고 잠시 믿었던 소유물도 가치도 금새 파괴된다.

너무나도 '나의 것'이었던 사랑마저 파괴된다. 

조율이나 수선보단 대체품을 찾는다. 찾은 후엔 씻은 듯 잊는다. 

항구적인건 감히 없다. 

 

잊혀짐이 쉽기에 만족도 짧다.

잠시 동안의 즐거움이 행복인지에 대해 고찰하기도 한다만

고찰도 그리 길게 유지되진 못한다. 그렇게 도파민을 찾는다.

 

SNS 속 성공은 마치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다.

그 덕에 선망은 질투가 되고 마음은 물질화되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포스트 빈곤'의 시대에서

우리는 모두 심리적 빈민자가 되었다.

 

우리는 소비하다가 스스로를 소모하고 있는 듯 하다. 

일상적 기대감은 끊임없이 높아지고 그 기대감 속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과정의 행복은 사라졌고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행복만 남았다. 

난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다. 그렇지만 나를 소모하고 싶진 않다. 휴 하마터면 다 소모할 뻔 했다.

 

'능력이 있으면 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해야 한다.',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해야 한다.' 등의 선입관 때문에 우리 개개인의 일상적 기대감은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사회'를 '가질수록 원하게 되는 사회'로 바꿔버렸다. 대다수 사람은 이 말의 현대식 버전을 아직 잘 모른다. 현대인은 계속해서 정신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데, 그 기준은 우리의 '세계'를 원래 개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진정한 도전과제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슬픔을 기저로 하는 불안정한 행복을 좇기 전에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순수한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나로서의 나를, 그리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를 좀 더 관심 있게 살피고 이해해야겠다.

 

풍격있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