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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40128] 마이앤트메리 "Drift" 롤링홀 29주년 기념공연

학창 시절부터 정순용씨의 목소리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 
(소년의 목소리라 함은 정순용과 김형중 투톱 반박 안받음)
자연스레 마이앤트메리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듣고 있으면 '네가 꼭 특별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담백한 가삿말과,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흔한듯 흔하지 않은 멜로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런 마이앤트메리가 작년에 14년 만에 새 EP를 들고 돌아왔고
그 EP의 수록곡 [여름밤]을 듣고
웃는 모습이 예쁜 편(이라 스스로 판단함)인 나는 혼자 설렌 맘에 
그 곡을 몇 번이고 돌려 들었다. 
 
앨범 발매 전후로 계속 공연을 하던 아저씨들을
단공에서도 보고, 라이브클럽데이나 펜타포트에서도 봤지만 
봐도봐도 또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 맘 감추지 못해 
이번 단독공연도 또 다녀왔다.
 
안갈 수가 없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Drift' 앨범의 전 곡을 연주하는 공연이었다. 
Drift는 내 최애 앨범이다. 모든 곡을 따라 부를 자신이 있었다. 

간만에 온 롤링홀은 쾌적했다. 사람도 많지는 않았다.


 
Drift의 첫 트랙인 Monologue로 시작한 공연은 
일부 순서만 바뀐 채 거의 앨범 순서대로 연주되었다.
거의 유일하게 '특별한 사람' 위치를 '랑겔한스' 뒤로 배치한 것 같았는데, 
랑겔한스가 끝난 뒤 S.E.O.U.L 기타 전주가 나오는 그 흐름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이 변화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음반을 Full Length로 감상할 때의 익숙함과 만족스러움에 더불어 
Sweet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고 (엄청나!)
앨범과 살짝 다른 버전의 (주로 인트로의 편곡이 있었다.) 곡들을 생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특별했다. 
 

이게바로 레전더리 스위트 라이브



첫 두~세곡 정도까지는 사운드가 큰데 음향이 잘 안잡힌 건지
혹은 내 귀가 적응을 못한 건지 듣기 까슬거리는 면이 있었는데 
몇 곡 지나고 나니 사운드도 안정적이어지고,
아저씨들의 입담에 (분명 정순용씨 9할) 관객 분위기도 유들거리게 풀려서 
마냥 즐겁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겉멋 없는 공연이었다. 
퍼포머들의 진실된 표정과 진실된 목소리 진실된 연주 
삶의 성찰과 불편함 없는 농담들이 섞인 연륜의 토크,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는 오래된 팬들의 흐뭇한 표정까지 완벽했다. 
 
아차차 한진영님의 머리스타일이 갑자기 바뀌어서
무대 등장과 동시에 '엥 머리가 왜저리 바뀌었지' 친구와 수군거렸는데 
마이크를 잡은 그가 설명을 했다. 
일련의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친근한 인상이 되고 싶어 잘랐다고 한다.
인생에 카리스마는 필요 없고, 친근함이 중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공연 내내 앞머리가 어색한지 꾹꾹 누르던 그를 보며 
정말로 속내가 따수운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공연을 보면서 무표정의 가르마를 선명히 탄 진영님의 외형에
조금은 무서운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머리를 바꾼 걸까? 오해가 미안해졌다.
 
'삶에 카리스마는 일절 필요없다' 는 그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친근한 사람이 되고자 시그니처에 가까웠던 외형을 바꾸는 결단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합니다. 앞머리 잘 어울리고 괜찮으니 그만 만지셔도 되어요 진영님
 

머리.. 보이려나



여튼 그런 토크들이 있었고 
Drift 수록곡이 끝난 뒤에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히트곡들 
공항 가는 길 / 골든 글러브 / 락앤롤 스타 가 이어졌다. 
그리고 앵콜곡은 [여름밤]
 
이 곡은 순용님의 곡인데, 그가 말했다.
제목은 여름밤이지만, 이런 곡을 되려 여름이 아닌 때 듣는 것의 느낌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그 말에 100% 이상 공감한 여름밤무새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곡 엔딩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긴긴 연주 구간이 황홀했다. 
붙잡을 순 없지만, 잊혀지진 않을 순간이었다. 
 

다음 공연에서 또 만나요 아조씨들



그리고 나오면서 홀린 듯 티셔츠를 구입했다. 
같이 있던 일행 2명도 모두 다 샀다. 그런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일행들과 헤어진 뒤

그 중 한 명이 내게 "공연에 같이 가자고 해줘서 고맙다"라는 톡을 보내 왔다.

이토록 뿌듯할 수가 없었다.  좋은 공연을 공유하면 좋은 마음이 갑절이 되어 돌아온다. 

여러 모로 좋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