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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023 글래스톤베리] 230626 Day 6 + 몇 가지 팁

모든 것이 끝난 월요일 아침 아니 새벽, 서둘러 채비했다.
 
한국에서 입수한 몇 정보에 의하면 런던까지 길게는 8~9시간까지 걸린다기에
잔뜩 쫄아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엉엉 다음날 출근 해야한단 말이에요)
 

너무 꼬질해져서 버리고 온 나의 정든 목베개 미안하다 그래도 이정도면 호상이야



예매한 런던행 코치는 9시 출발이었지만 이곳의 생태계를 며칠간 살펴보니 시간은 중요치 않을 것 같았다.
6시쯤 티피를 나섰고, 처음 도착했던 코치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집가는 등딱지들



5일 간 무대와 무대 사이를 이동하는 것도 멀게 느껴졌던 페스티벌사이트인데
떠나는 길은 이상하게도 짧게 느껴졌다.
홀가분한 발걸음 탓이었나 싶다.
농장을 나서는 기분엔 서운함도 있었지만 시원함이 더 컸던 것도 같다. (문명을 느끼고 싶어)
 

마지막 게이트의 모습



예상 밖으로(!) 코치 탑승은 예매 시간에 맞춰 진행중이었다. 
두시간이나 떠버린 우리는 잔디밭에 다시 캠핑 의자를 피고 배낭을 베개삼아 거지꼴로 시간을 보냈다. 추웠다.
 

추위에 떠는 부랑자들



그렇게 시간 맞춰 코치를 탔고,
푹신한 좌석에 5일만에 앉아본 나는 거대한 감동을 못이기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떠보니 런던이었다. 걱정했던 8시간의 절반인 4시간쯤 걸려 런던에 도착했다.
 
맛다운 맛에 굶주린 동행들은 눈뜨자마자 식당을 검색했다.
고심 끝에 평점이 좋은 타이 음식점을 픽, 코치서 내리자마자 식당으로 향했다. 
 
이름하야 <<<Rosa's Thai Victoria>>>
검색해보니 영국 전국구 체인같은데, 맛이 굉장했다.
문명의 맛에 뒤집어진 팀지토 일행들은 눈물을 흘리며 식사를 했다. 
말 그대로 게눈 감추듯 먹었다. 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밥을 잘 먹는지 이때까지 결코 몰랐다.
 
London Victoria | Thai Restaurant & Delivery | Rosa's Thai (rosasthai.com)

London Victoria | Thai Restaurant & Delivery | Rosa's Thai

Explore the authentic flavours on the menu at Rosa's Thai restaurant in Victoria, London. Open seven days a week to dine-in, takeaway or order delivery.

rosasthai.com

 

뒤집어지는 문명의 비주얼 앞에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이들



밥을 먹고 문명의 아이콘, <<<스타벅스>>>에 갔다. 
빅토리아 역 내부에 있는 곳이었다.
감동의 <<<아아>>>를 마셨고 또 눈물을 흘렸다. 
 

스타벅스의 한때. 어르신에게 인스타 사용법을 알려주는 중



우연찮게 일행 4명이 같은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함께 히드로 공항에 갔고, 함께 위스키 쇼핑을 하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짧고 강렬했던 5일 간의 글래스톤베리는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맹렬히 한식을 먹고, 맹렬히 잠을 자고, 바로 출근을 했다.
현실 적응이 너무 빨라서 뽕에 취해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치만 한 일주일 지나자 동행들이 그리워졌고, 만나자고 졸라서 기어이 일주일만에 또 얼굴을 봤다. 
좋은 기억이긴 했나 보다. 

유일한 남찍사 단체사진



글래스톤베리를 다녀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가장 강력한 건 이거다. "뜬구름을 손에 잡아보았다"는 것
23년 여름 내 손에 잡힌 뜬구름은 번쩍였고 떨렸고 촉촉했다. 
충분히 좋았다. 다음 뜬구름을 잡아보고 싶어졌다.  
 
느슨하게 매여진 마음가짐에 간혹 장력이 느껴진다면
장력을 따라 매듭을 한번쯤 꼭 묶어 보자.
새로운 매듭에 마음이 복잡해 지겠지만, 그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할 지도 모른다.
 
 
 
+++
생각나는 대로 경험에 의한 글래스톤베리 팁을 정리해 본다.
23년 기준이니 이후 맞지 않을 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페스티벌행 코치를 끊는다면 런던 빅토리아 출발을 추천한다. 물론 차는 막히지만, 글래스톤베리 시즌에는 영국 전역이 막힌다. 가장 많은 차가 다니는 런던이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
  2. 빅토리아발 코치 탑승 시 티켓에 찍힌 시간과 상관 없이 티켓을 가진 사람이라면 순서대로 태운다. 빨리 가고싶다면 예매한 시간보다 앞서더라도 빨리 줄을 서자.
  3. 반대로, 런던으로 돌아가는 코치는 시간에 맞추어 사람을 태운다. 괜히 일찍 나가지 말자.
  4. 페스티벌 내에서 술을 마시고 싶다면 위스키를 사 가자. 내부에서 파는 맥주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맥주 때문에 화장실에 자주 가야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곤욕이다.
  5. 아침저녁으로 정말 춥다. 따뜻한 옷을 챙기고(패딩까지도 OK) 잘 때 춥지 않도록 핫팩도 챙기자.
  6. 글래스톤베리에는 공연 이외에도 즐길거리가 많다. 영화, 공연, 서커스, 댄스강습, 퍼레이드, 요가, 공예 원데이클래스 등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하자. (다만,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에 스케줄을 짜기가 쉽지는 않다.) 
  7.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짜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면 피라미드 헤드라이너를 포기하자. 
  8. 날씨가 좋다면 파크스테이지 옆 언덕에서 노을을 챙겨보자. 최고로 낭만적인 해질녘을 볼 수 있다.
  9. 사먹는 밥이 맛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자. 맛이 보장된 싸온 음식들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다니는게 좋다. 과일을 사오는 것도 추천.
  10. 피라미드, 아더, 우지스, 웨스트홀츠 등의 대형 무대는 웬만큼 멀리서도 짱짱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나,  파크스테이지는 무대에서부터의 거리가 멀면 사운드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진다. (주변에 소규모 디제잉 플로어나 펍이 많기 때문)  파크스테이지에서 꼭 보고싶은 공연이 있다면 일찍 가서 앞자리를 사수하자.
  11. 캠핑숍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을 판다. 무언가 모자라다면 걱정말고 사서 쓰자.
  12. 가디언지 부스에서 뉴스를 사면 매일 다른 디자인과 색상의 가방을 덤으로 준다. 저렴하고 질좋은 기념품이니 꼭 챙기자. 
  13. 포토 부스에서 특별한 사진을 남기자. 2023년에는 티피존 바로 앞 Glastonbury on Sea에 있었다. 참고로 글래스톤베리 온 씨에 가면 페스티벌사이트의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고, 재밌는 행사들도 있으니 한 번쯤 가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