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래스톤베리 동행들과 송년회 모임을 가졌다.
한 분이 블로그에 글래스톤베리 포스팅을 올린 게 있어서 그 포스팅을 토픽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추억을 꽃피우며 하하호호 하는 와중에 차마 '나도 막 포스팅하기 시작했어!'란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면 부끄럽잖아
노트북을 키고 타자를 치는 지금 살짝 찔리니 미리 사과부터 박아야겠다.
혹여나 인터넷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이 보잘것 없는 블로그에 닿은 팀지토 일원이 있다면 미리 얘기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네네
예... 여기도 여러분들의 추억이 글로 남겨져 있답니다. 그리울 때 놀러오십사 저도 '지토'라는 키워드를 써보겠습니다
지토 지토 지토 지토...
여하간 본격적으로 영국 거대 농장에서의 이튿날 기억을 소환해 보자.
첫날 밤에 열심히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들었건만 빨리도 깼다.
일단 시끄럽고 / 잠자리가 불편하며 / 해도 빨리 뜨고 / 내가 걍 예민하기도 하고
일어나니 숙취로 몸과 마음이 곤란했지만, 의연한 척 하루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공연은 금요일부터였기에, 목요일인 오늘은 부지를 탐험하는 날이었다.
이 날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실은 5일 내내 비도 거의 안오고 쾌청한 날이 지속되었다.
난 여행 날씨운이 좋은 편은 아닌데, 누군가 날씨요정이 함께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영국의 하늘은 상당히 낮았다.
이상하리만큼 구름이 낮게 있어서 하늘과 가까운 나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위도가 높아 태양 고도가 낮기 때문이란다.
중등과학 수준으로 특별한 경험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참 재미있다.
티피 밖으로 나와 그 유명한 글래스톤베리 스펠링 구조물.. (뭐라고 표현한담?) 을 우선 찾아갔다
정작 가보니 크게 볼품있진 않았다만 사진에서만 보던 것을 실물로 본다는게 그저 신기했다.
이 구조물을 찾아간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아주 신기한 동행인께서 기념 현수막을 만들어 오셨기에, 그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치만? 예쁜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다.
구조물이 너무 크기도 했고, 바람이 불어 현수막이 평평하게 보이기도 어렵고, 양놈들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우선 예쁘게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 소속감이란 이런거구나 싶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살면서 소속감에 즐거움을 느낀 적이 언제쯤이었나 싶은데, 영국에서 이 사람들과의 소속감은 나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어려운 기회였고 타지이고 극소수의 동양인이라는 조건들 덕분일수도 있겠으나
일단 같이 간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인게 큰 요인인 것 같다. 뭔가... 적당했다.
꼭 맞는 톱니바퀴는 아니지만, 마찰이 적어 부드럽게 굴러가는 동그라미들 같았다.
여튼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큰 스테이지들의 위치를 이때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걷고 걷고 피라미드에 다다랐다.
글래스톤베리 = 피라미드 스테이지 라는 상징성이 있으니만큼 실물로 마주하자 심박이 느껴졌다.
무대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부지가 상당히 컸다.
이 부지에 사람들이 다 들어찬다고? 에이 아니겠지~ 싶었는데, 바로 다음 날 알 수 있었다. 그게 다 찬다.
이날 봤던 피라미드의 부지가 남은 3일간 봤던 부지가 맞나 싶을 만큼 다른 광경이 펼쳐지더라.
그리고 부지에 스피커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무대 양 옆에만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찰 공간 곳곳에 거대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야외 스테이지라서 음향이 아쉽다는 말을 아무도 꺼내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 이게 세계1위 페스티벌이구나 싶었다.
피라미드 부지의 여러 대의 스피커를 처음 봤을 때, 이때 "멋진 곳에 왔다"는 생각이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피라미드에서 기념사진도 잔뜩 찍고, 잔디밭에 앉아서 비틀즈의 음악도 듣다가(와 영국이다!)
수많은 깃발과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무와 수많은 음식점들을 거쳐
이소가스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라면 먹자!!
페스티벌사이트에 온지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이곳의 음식이 별로라는걸 간파한 우리 한국인들은 라면을 너무나도 먹고 싶어했다.
캠핑용품을 챙겨온 고마운 동행인 덕분에 라면이라는 빛나는 헤드라이너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사진의 간곡한 젓가락들이 보여주듯... 우리는 진심이었다.
밥을 먹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휘둥그레 구석구석 좀 더 돌아다녔던 것 같다.
저녁엔(시간만 따지면 밤에 가깝다. 해가 너무 안 진다. 끊임없는 낮...) 다같이 노을을 보기 위해 언덕에 올랐다.
황홀한 광경이었다. 누구라도 진심을 끄집어낼 것 같은 시야였다.
이때 같이 간 동행인이 이런 말을 했다.
한 5000만원 내고 매년 여길 올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자기는 낼 것 같다고
그정도였다. 이때의 감성은 그랬다
글래스톤베리에는 밴드셋의 공연이 벌어지는 큰 무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디제잉이나 소규모 공연이 벌어지는 작은 무대가 정말 수십가지가 있다. (수백이려나?)
그중 새벽 시간을 책임지는 클럽들이 모여있는 구역들이 있는데, 뭐라 부르더라... 여튼 밤엔 그곳에 가 봤다.
가 보긴 했는데, 즐기진 못했다.
말 그대로 사람한테 휩쓸려 다녔다. 정말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은 수준이었다.
의지없이 그저 존재해야 하는 퇴근길 강남서 타는 지하철같았다.
재미있어보이기는 했지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핫한 클럽은 구경도 못하고, 작은 무대 몇 가지를 보게 되었다.
라틴 댄스 파티를 잠깐, Town of cats라는 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둘 다 개짱이었다.
이런 에너지를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한 번 더 글래스톤베리에 가고싶을 정도
그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멘탈을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을 꼭꼭 다잡고 코어힘도 길러야지
기가 잔뜩 빨린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성분이 통화하다 그대로 픽 쓰러지는 상황을 목격했다.
아마 약을 한 것이었으려나... 쓰러진 상태로 통화를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하는데 상당히 기이했다.
마냥 안전하고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겠다 싶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이튿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엔 악틱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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