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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025 글래스톤베리] 250626 Day2

둘째날이 밝았다. 

전날 잘 때 춥더니만 아침에도 흐리고 쌀쌀했다. 

 

재작년에 '한국에서 싸온 음식을 아침에 든든히 먹고 가는 것만이 살 길'임을 깨달았던 우리는 

각종 컵라면과 누룽지, 스프 등을 바리바리 싸 왔고

매일 아침을 풍성한 짭짤한 한식으로 든든히 먹었다. 

 

정말 맛없어 보이지만 정말 맛있는 것들.

 

이 날 아침 라인업은 - 신라면, 새우탕, 누룽지스프, 볶음김치 였다.

누룽지스프 라는 음식... 무인양품에서 발견하고 10개쯤 사갔는데 아주 요긴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든든한 누룽지죽이 된다. 

닭곰탕맛 / 조개미역국맛 / 김치맛 ← 이 3가지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 입맛엔 조개미역국 > 닭곰탕 >> 김치맛 이었다. 

여튼 해외 나갈 때 요긴한 아이템으로 추천한다.

 

배불리 먹고 모닝커피타임을 가졌다. 

맛잘알 멋잘알 친구가 종이컵을 들고 온 덕분에 

낭만 한스푼 더 타서 마실 수 있었다. 

 

이 날 나의 픽은 카누였는데, 다른 날 믹스커피를 마셔 보고 깨달았다. 카누 비켜!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요가하는 사람들이 아주우 많았다. 

재작년에 모닝요가를 못해본 것이 아쉬워 이번엔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못하고, 아침부터 보고싶은 팀이 있어서 못하고, 피곤해서 못하고, 

(어쩌구 핑계도 많다.)

결국 올 해도 못하고 왔다. 아마 언젠가 또 가도 못하지 않을까? 이젠 미련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이나 요가 인구가 가장 많았다. 본격 공연데이 전에 몸과 마음의 수련을 해 두려는 것이었을까...
자그마한 버스킹 스테이지. 숨은 고수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한 번쯤 봐줘야 하는 사람 없는 피라미드.

 

여기저기 둘러 보며 구경하다가 

살사댄스를 배우기 위해 친구들과 글라스토 라티노에서 만났다. 

'Salsa class'라길래 찬찬히 스텝을 가르쳐주려나 하고 기다렸는데 

웬걸?

그냥 짱짱 핫한 강사 언니오빠가 나오더니만

짱짱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강사들이 짱짱멋지게 앞에서 춤추면

모두가 허겁지겁 따라 추는 형태였다. 

 

결론은 골반이 아프도록 무아지경 댄스파티를 즐겼고 

1시간 수업 중 30분만에 헥헥대면서 빠져나왔다. 

 

화려한 실내 장식이 매력적인 글라스토 라티노. 저 앞에 빨간 옷에 하얀 두건을 쓴 선생님의 골반 놀림이 어마어마했다.

 

10년도 더 된 2013년 쿠바 여행을 가서 원데이로 살사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다. 

스텝을 외우고 제대로 추고파 삐그덕 거리고 있던 때

내 파트너가 되어 주었던 강사 선생님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amor'라고 말해주던 게 생각 났다. 

그녀가 내게 말해 주고 싶던 것은 아마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몸을 맡기라는 거였던 것 같다. 

 

글라스토에서 흔들어 재끼며 또 다시 느꼈다. 

스텝 같은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지금의 감정에 집중하면, 몸은 절로 움직인다.

그 몸짓이 겉으로 어찌 보일 지는 중요치 않다. 

내가 순간을 즐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흥겨운 라틴 파티를 마치고 친구들과 이곳저곳 탐방했다. 

귀염둥이 모자도 써 보고 악세사리도 구경하고 

맥주와 밥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아주 멋진 부엉이 모자를 발견해서 사고 싶었는데 원화 기준 약 6만원이라는 금액에 서둘러 내려놓았다.
글라스토의 깃발들은 아주 화려하다. 이들이 주는 시각적 청각적 효과는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날의 점심은 푸틴. 구운 파프리카와 사워크림이 올라간 걸 선택했는데 맛도리였다. 한국서 푸틴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나?

 

아참 밥 먹을 때쯤 잔디밭에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핸드폰을 한 번 잃어버렸었는데 

주변에 있던 서양칭구들이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곤 친절히 같이 찾아 줬다.

유럽에서는 뭘 잃어버리면 분명 누군가 훔쳐간다던데 

적어도 글라스토 페스티벌장 안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과연 러브 앤 피스가 가득한 이곳... This is Glasonbury...

 

더 둘러보다가 티피로 복귀했다. 

멋쟁이 동행인이 만들어 온 현수막을 티피에 걸고 사진을 찍는 기념행사를 하기로 했던 것.

직장인 4명이었기에 현수막 문구는 '연차 소비 촉진 워크숍'이었다. 

근처 티피에 머물던 외국인들이 저게 무슨 말이냐고 몇 번 물어봤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워서 

'Holidays in Glastonbury! 와하하!'로 답하곤 했다. 

 

우린 모두 연차 최소 5개씩을 내고 온 파워 한국 직장인들. 애환이 느껴지는 자랑스러운 현수막...

 

이후 다시 파크 근처로 나와 작은 바와 공연장들을 돌아다녔다. 

목요일인 이 날까지는 본격적인 공연이 없기 때문에

소규모 공연장과 바에 사람이 정말 어지간히 많다. 

 

특히 Stonebridge Bar는 티피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글라스토 2회 참석에 한 번도 비집고 들어가보질 못했다. 

대충 밖에서 듣기로는 모두가 좋아할 법한 락 음악을 선곡해서 빵빵하게 틀어주는 듯했다. 

낮부터 밤까지 모두가 떼창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톤브릿지 바. 외부까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저기서 맥주 주문하려면 몇 명의 사람들에게 'sorry'를 외쳐야 하려나

 

이름도 모를 작은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좀 봤다. 

당연히 공연장 이름을 몰라서 팀명도 모르겠다.

하하 하드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에너지가 좋아서 시간을 좀 보냈다. 

마지막 곡 직전에는, 프론트맨이 여기저기 건장해 보이는 남성들을 지명하며 앞쪽으로 나오라더니

자 이제 너네들은 모싱을 해야 해. 라고 시켰다.

재밌는건 모두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 대략 모자 슨 덩치 있는 아저씨들은 다 앞으로 불려 나갔다고 보면 된다.

 

핑크 듀오. 양말 색을 보고 감탄했다. 이곳에는 정말 신기한 차림의 사람들이 많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아직 아주 밝고 쨍하지만)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긴팔을 입고 다녔음에도 으슬거린 탓에 숙소로 복귀했다. 

침낭 속에서 몸을 좀 데피고, 옷을 껴입고, 

흐린 날이지만 노을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친구들과 위스키를 싸들고 언덕에 올랐다. 

 

저 멀리까지 보이는 모든 것이 텐트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 누가나에게 알려줘요... 다들 오밤중에 텐트 어찌 찾아가냐구요...



아쉽게도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고 기념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고...

외국인들 사진 찍어주고 외국인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그렇게 밤을 보냈다. 

 

소중한 위스키를 품에 안고 한 컷,,,
글라스토 구조물 앞에서 한 컷,,,

 

 

이날 밤은 조금 일찍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워낙 추웠고, 다음 날부턴 본격적인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토일 3일 간의 공연 여정 중 나에게 가장 하드한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