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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2025 글래스톤베리] 250625 Day 1

그곳을 또 갔다 기어이

 

기대 없이 시도한 티켓팅이었기에 

영국에 가기 직전까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심지어 영국행 전날까지 회사에선 이슈들이 터져 나와

좋지 않은 마음으로 출발하게 된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음악은 언제나 좋고

라이브 셋의 쿵쿵이는 스피커 소리는 언제나 마음의 기본 높이를 높인다.

왁자지껄 발생하는 - 익숙한 듯 새로운 - 거대 농장에서의 하루하루는

도시 삶에서는 꺼낼 일이 없어 마음 어딘가에 구겨져 내박쳐 있는 생소한 감정을

질질 끌어와 내 얼굴 앞에 마주하게 했다.

 

나를 내려 두고 나를 새로이 끼워 넣는 경험

시작이 어떠했건 

23년의 첫 경험보다, 어떤 면에선 더 좋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 경험이었다. 

 

이제 첫 날부터의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웹에 남겨 보자. 

 

 

글라스토 첫 날, 우리의 동행인 친구들과 빅토리아 스테이션에서 만났다. 

낑낑거리는 본인만한 짐들을 들고 만나

위스키 두 병 구매 후 앞으로 5일 간 만날 수 없는 스벅의 아아를 사 들고

길고 긴 코치 줄에 합류했다. 

도시의 맛 문명의 맛 새까만 스벅 아아 짠

 

역시 사람이 아주 많았다. 

코치스테이션 주위를 빙 둘러 일렬의 짐덩어리들과 사람들이 와글와글 거렸다. 

그 옆을 지나가던 여성분이

이 Queue가 뭐냐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We are going to Glastonbury!"

그녀는 놀라며 Enjoy라고 답해 줬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의 드릉거림이 말이다. 

 

코치타러 가는 길. We are Glastonbury Passengers

 

코치를 타고, 추위가 뭔지 모르는 영국놈들 덕분에 덜덜 떨면서

약 4시간이 넘도록 달렸다.

그리고 도착했다. 

 

이번에도 보았다. 왼쪽 창의 스톤헨지

 

재빠르게 술을 페트병에 옯기고

International Ticket Collection에 줄을 서고 

티켓을 받고

입장 팔찌를 받고 

에코백과 지류 가이드를 받고 

(에코백이 너무 예뻤다! 지금도 출퇴근 시 애용하는 중)

티피를 향해 걸었다. 

 

세상 화려한 입장 티켓. 클래식하면서도 화려한 존재감이 글래스턴베리라는 공간과 매우 잘 어울린다.
입장 팔찌 교환 장소. 이곳의 크루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페스티벌의 첫인상은 최고조다.

 

재작년에는 티피까지 우왕좌왕 1시간 소요되었으나 이번엔 달랐다. 

페스티벌장에 입성하자마자 모든 것들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재빠르게 최적의 루트를 따라 걸었고 

3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이래서 경력자 경력자 하는구나... 를 슬프게도 잠시 생각해 버렸다. 

 

짐을 풀고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아더스테이지 앞의 머천샵이었다. 

날씨가 생각보다 많이 추워서 반팔 대신 글라스토 로고가 박힌 Oversized Sweatshirts를 한 장 샀다. 

안에 기모 처리가 되어있어서 아주 요긴했다. 

이번 글라스토는 밤낮으로 매우 쌀쌀했기 때문. 

앞으로 한국서 옷을 입으면서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글라스토를 추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라스토의 공식 머천샵. 영국애들 미감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다 예쁜 티셔츠가 이렇게나 없을 일인가?????

 

머천을 사고 저녁으로는 버거를 사먹었다. 

'맛'이라는게 마땅치 않은 영국에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맛은 '고기 본연의 맛'이다. 

그래서 버거는 늘 옳은 선택이었다. 첫 날의 끼니도 그러했다. 

 

이친구들 햄버거는 우리나라 햄버거보다 좀 더 쫄깃한 식감이다. 질긴 식감의 부위도 함께 패티로 만드는 듯?

 

식사를 마치고 티피로 돌아가면서 Medical centre를 찾았다. 

동행인의 발목에 통증이 심했기 때문. 

(추후 알게 되었는데 전날 너무 아파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가기도 했었다고 !!)

 

의료진 부스는 꽤나 전문적인 병원같은 시스템이었다. 

접수를 하고, 증상에 맞는 의사가 배치되고, 각 담당의의 부스에 들어가 진료를 받는 형태였다.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30초만에 진찰을 마치는 한국의 의사들과 비교가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뭐 여튼 동행인은 테이핑을 받고 목발을 쥔 채 진료실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히 발목이 부러진 것은 아니고, 과도한 짐과 비행기 기압 차에 의해 인대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결국 그는 페스티벌 5일 내내 테이핑을 다시 받고 목발을 짚으며 다녔다. 

불편하지만 덕분에 온갖 배려를 받고 다녔다고 한다. (오히려 좋아?)

 

Medical Centre를 빠져나가자 해질녘이 다 되었는데, 구름이 낮게 깔린 덕에 노을을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구름 아래에 아주 얕게 펼쳐진 샛주황빛이 

그래도 어느 때처럼, 태양은 아름답게 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짙은 구름 아래 위엄을 밝히는 샛주황빛. 색다른 아름다움이다

 

밤이 되었고 

여전히 티피에서 바라보는 페스티벌 사이트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여전이 비현실적이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위스키와 함께 개막을 알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친구들과 설레는 기분을 즐겼다.

 

티피에서 바라보는 리본 타워와 파크 무대
모닥불 주위에 수많은 티피러들이 모여들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감상을 공유하는 자리. 그만으로 낭만적이다

 

내가 어쩌다 이 곳에 또 왔나 싶은 어이없는 우스움과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 왔지 싶은 당연한 기꺼움과 

내일부터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싶은 기대감과 

처음 방문하는 친구의 해맑은 발걸음을 보며 느껴지는 풋풋함과

이 멋진 광경을 함께하고 싶은 사랑하는 이들이 떠오르는 애틋함

 

코끝에 머무는 찬 위스키의 향이 적당히 달콤했다. 

날이 추워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잠깐의 향긋함은

강렬히 오래 타들어가는 목의 감촉과 대비되었다. 

 

티피가 좀 다 다닥다닥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낮에 봐도 밤에 봐도 아름다운 티피존

 

날이 많이 추웠다.

모닥불 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티피로 돌아 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옷을 껴 입고 핫팩을 끌어안은 채 모두가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 첫 날이 끝이 났다. 

 

크게 한 일은 없지만

첫 날에 존재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언가 큰 일을 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