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방인 소재의 영화가 많이 보인다.
어디서든 소속감을 얻기 힘든 요즘
'공동체'라는 단어는 허상같기도 하다.
내가 이 곳의 주(인)공이 아닌 이방인인 것 같다는 생각,
소속감이 희귀한 감정이 된 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이방인들은
영화로 소설로 처지를 이해받으려 한다.
[키메라]가 그러했다.
낯선 외양에 낮선 말씨를 쓰는 주인공은
이탈리아라는 문화적 특수성과 가족적 가치가 발달한 곳에서
존재만으로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 이방인이다.
(유독 키가 커서 더더욱이....)
낯선 곳과 자신을 이어주는 강력한 연결 고리를 잃어버린 절망 속
그는 새로운 고리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차마 잇지 못한다.
그는 키메라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키메라라 잇지 못할 것을 잇는다.
세상을 뒤집어 이승이 아닌 저승과의 연결을 하는 그는
땅을 딛고 있는 곳에 속하지 못하나
그 누구도 속하지 못하는 과거에 속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숙명은 마음을 이길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리고 그 숙명의 빨간 실은 결국 진심을 향한다.
처음 이 영화를 픽한건
[도굴꾼]이라는 매력적인 직업과
[이탈리아]라는 매력적인 배경 때문이었다.
관람 후, 그 두 가지 키워드는 모두 만족스러운 후기를 건내 줬다.
평소에 도굴이라는 작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도굴이란 수많은 자의 향수,
이승엔 없을 미래에 대한 위로,
그들을 위하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자본의 원리로 값이 매겨지는 작업이었다.
박물관이 잔인한 공간이겠다는 생각은 해 보았다만
반인류적인 공간이라는 생각까지 심어졌다. (요즘도 그런가?)
미래 세대는 과거의 마음을 찢어 자신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해바라기가 심어진 황량한 길
눈부신 푸른 바다와
등장 인물들에 무심히 걸쳐진 멋진 옷들
영화 내내
이탈리아의 낭만이 느껴지는 화면들이
스크린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주인공이 열차에서 내려 숙명으로 다시 향할 때
무언가에 이끌린듯 걷던 발걸음 뒤로 펼쳐진 평야의 모습이 아른하다.
그 장면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 다시 보고 싶네
글을 쓰다 보니
좋은 영화를 보았다. 라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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