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야마모토 케이의 [질투라는 감옥 - 우리는 왜 타인에게 휘둘리는가]

나에게도 남에게도 수치스러운 질투라는 감정
그래서인지 이제껏 질투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질투의 개념과 여러 철학자의 고찰, 사회와의 연관성까지 
몇 백 페이지에 걸친 '질투'를 읽어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질투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 비밀스런 감정이 삶에 미친 영향을 헤아리니 
재생산된 수치가 몰려들었다.

우선은 수치스러움이 앞서지만 
남은 절대 알 수 없는, 나만의 질투를 더욱 깊이 파헤칠수록 
되려 질투함과 그의 당함을 줄이고 현명히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책을 접하기 몇 달 전 핸드폰 사용량을 줄이고자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했다.  
이후 떠다니던 마음이 가벼이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는 질투를 가리기 위해 누르던 하트 버튼의 부재 덕분인 것 같다.

과거에는 질투받지 않으려 노력했다면 
요즘 세상은 질투받기에 거리낌이 없다. 
질투하는 자들이 질투를 가리려 누르는 버튼이 쌓일수록 
질투받는 자들의 부와 명예가 쌓인다.
지긋한 과시에 신물이 나지만
자기애 대신 자존심만 남은 현대인에게 
비교하위의 인정과 질투의 노출은 넘을 수 없는 미션이기에 

하트는 쌓이고 부가 쌓이고 박탈감은 두 배로 쌓인다. 


누군가는 이러한 질투심을 모아 정치에 이용한다.
이는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질투는 상향뿐 아니라 하향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보다 잘난 자의 행복도 못난 자의 행복도 보기 싫은 것이 인간이다. 

작가는 

‘차이를 인정하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면 질투는 민주주의의 조건이자 결과‘

라고 명쾌한 해석을 내어 놓는다.
개인의 손익과 무관함에도 끝없이 피어오르는 이 비합리적인 감정으로
사회를 꾸려나가고 변화시키는 인류의 모습이 조금은 충격적이고 우스웠다.

책은 질투를 없앨 수 없다고 말한다. 
평등이 실현 불가능한 추구미인 이상 질투는 불가결하기 때문이라고.  
대신 질투의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원화된 가치를 가진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개성을 기반으로 나만의 능력을 만들고, 사회가 그를 다른 가치와 동등하게 인정할 때 질투는 흐려질 수 있다. 

2024년 12월, 최근의 정치 이슈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신만의 가치에 매몰되어 남들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혼란이 가득하다.
심지어 국민 대다수의 가치가 자신과 반대됨에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다원화된 가치를 포용할 수 없는 자는, 즉 질투를 현명하게 다룰 수 없는 자는
미래의 리더의 자질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우리는 왜 타인에게 휘둘리는가?'
책의 부제에 대한 답을 생각한다.
실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질투를 없앨 수 없다면 질투를 줄이거나 피하자. 
나를 견고히 만들어 나로 충분하게 만들자. 
비교와 질투를 인정하고 나와 대화하자.

결국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나'임을 또다시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