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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이승우 작가의 [캉탕]을 읽고 [모비 딕]을 읽고 싶어졌다. 

허나 방대한 분량에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때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여행용 포켓북으로 모비 딕을 발견했다. 

사이즈에 비례해서 축약되어 원작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을 테지만 -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네 - 대작의 개괄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하자. 

 

5시간의 비행 동안 한 권을 뚝딱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고래잡이에 뜻이 있지도 않고, 거친 항해를 시도하고픈 마음도 없다만, 게다가 뱃멀미도 있다만, 비행기의 은은한 흔들림에 바로 잠들어버리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비 딕을 쫓고 싶었고 끝을 보고 싶었다. 

 

자연에의 복수라는 에이헤브 선장의 집념

자기최면에 가까운 이 집념은 여러 증언에 의해 의해 겉잡을 수 없이 부푼다. 

오래된 기억에 외부의 체험과 증언이 추가되면 보이지 않는 대상은 더욱 커진다. 

일종의 신격화에 가깝다. 

더욱 쫓을 수밖에 없게 되고 더욱 확신에 찰 수밖에 없다. 

분노에 차 그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에이헤브의 모습은 스스로 제물이 되는 신도의 모습과 같았다. 

그의 분노는 모비 딕을 향한 것이 아닌, 내면을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관찰하는 외경과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이스마엘의 시선은 곧 나의 시선이 되었다. 

내가 좇는 것은 이스마엘의 시선,

이스마엘이 좇는 것은 에이헤브의 시선, 

에이헤브가 좇는 것은 흰 고래로 형상화된 믿기 힘든 믿음 

 

결국 나또한 나를 향하는 믿기 힘든 믿음을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