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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못함을 연습하기

어린 시절부터  크게 못하는게 없었다.

공부도 잘 했고, 음악 시간에도 체육 시간에도 늘 잘 하는 학생이었다.

한 가지 못하는 것을 꼽으라면... 사실 한 가지도 아니네 손재주가 많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없다

 

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해야 하면 남학생들과 함께 남아서 과제를 해야 했고

미술 시간에는 늘 자신없는 작품을 내놓아야 했다.

 

이후 쭉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삼가며 살아왔고

그래서인지 미술적인 / 오브제 창작의 재능에 대한 로망과 함께

'난 못하겠지' 라는 결여된 자신감이 늘 함께했다 

 

그런 나는 몇 달 전부터 도자기 공방을 다니고 있다.

이런저런 상황이 맞아떨어진 덕이기도 하지만

자신감을 찾고자 하는 나름의 도전이기도 했다

 

공교하지 못함은 진작 드러났어도

뭐라도 만들 수 있다는 다행스러움에 숨어 다닌 요즘

 

엊그제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다

 

만든 작품들을 최종 재벌하기 전 마지막으로 다듬고 유약을 바르는 날

왜 내가 만든 것들에만 죄다 금이 가 있고

왜 내가 하는 붓질은 이리도 엉성한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 서글프고 힘든지 왜 나는 이지경인지

 

온갖 부정적 감정이 몰려왔지만

이런 감정의 일면을 노출하기엔

공방 선생님들은 해맑게 칭찬 폭격을 해주고 있고 (이건 늘항상 그렇다)

함께하는 수강생은 누가봐도 멋진 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다. 뚝딱

 

감정을 숨기느라 고통스럽던 공방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지금껏 주변인에게

'나 너무 재밌게 새 취미로 공방 다니고 있어~'

라고 말하고 다녔던 지난날이

부족한 자신감을 숨기려는 방어 기재였다는 생각이 덮쳤다

과연 그동안의 내 감정이 오롯하게 재미있었을까?

 

실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는게 어렵다 

늘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쩌면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못하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에게 더 진실된 나이기 위해서

 

다음 주부터 당분간은

기물 만들기 연습이 못함의 연습이 되어도 충분할 것 같다 

 

(다만 물론 아주 물론 공들인 컵이 부서져 있다면 눈물을 흘릴 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