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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주혜 작가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불안를 떨치고자 하는 자는 걷는다.
그들은 왜 걷는가?
혹자는 걸음으로 과거를 뒤로 차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자들은 걷기를 현재를 밟아 과거를 생산하는
일이라 말한다.
걷기는 과거를 과연 삭제하는가 생산하는가

걷는 행위는 땅을 밟으며 뒤로 밀어 낸다.
걷는 행위는 현재를 밟으며 과거를 밀어내며 미래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밟아지는 현재는 새 과거가 되어 버린다.
과거는 남아 있다. 영영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에 추억에 자의적 타의적으로 얽매인다.

걷는 자는 글을 쓴다.
자신의 글, 일기, 엮여 자서전이 될 수 있는 것들
허나 내면의 이야기는 내면이기 때문에 외면으로 드러날 수 없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건 외면이기 때문에 내면일 수 없다.
굳게 비밀을 약속하고 써내려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들
기억의 폭압 속 형태가 바뀌고 만다.
자구적 행위가 스스롤 속이는 아이러니
이를 거짓이라 할 수 있나. 거짓이 아닌 글쓰기가 존재하는지 반문이 돌아온다.

오해와, 거짓과, 이견과, 힐난과, 질투와, 폭폭함으로 가득 차 이울지는 나날들
그 나날들 속 희부윰한 마음이 하나둘 켜지면 겨울 지나 봄에 돌아오는 제비마냥 20도 언저리의 안정한 온도가 - 생각보다 밝은 빛으로 - 찾아오기 마련이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나의 것이자 너의 것이기도 한 기억은 내겐 모난 곳이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일 지라도 네겐 바람과 풍랑에 둥글어진 모양일지 모른다.
너의 것도 나의 것도 차마 거짓이라 칭할 수는 없을 터
시간과의 반응으로 열을 잃고 성질이 변해 버린 화학 변화의 일종
너와 나의 글은 퍽 다른 내용일지 모른다
얼기설기 엮여 이제는 풀기 어려운 지속되는 관계 속 영영 남아버린 기억들은 눈에 영영한 눈물을 남긴다.

자꾸 보이는 제비라는 이유로 펼쳐진 책장은 자꾸 보이는 제비를 더 자꾸 보이게만 했다.
오늘은 그들이 내 앞에서 수십 마리씩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앞으로 그런 날이 더 많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