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새앙쥐가 되어선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던 원두막 아래의 40분 남짓
첫 번째 그룹은 할머니 3인
당 얘기를 하며 감을 깎아 드셨다.
비를 맞아도 된다는 쿨한 할머니, 비맞으면 어쩌냐는 걱정스런 할머니,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빨간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어서 빨간 옷을 골랐는데 하필 비를 피할 모자가 달리지 않은 옷이라 아쉽다는 귀여운 할머니
쿨한 할머니는 당신 드시려던 감의 반쪽을 내게 주셨다
할머니 되면 힘드니까, 밖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나든 친절하게 대해 달라던 우리 외할머니의 말이 기억나
"어머 감사합니다~!"
를 한껏 미소지으며 말했지만
쿨한 할머니는 내 얼굴도 안보고 감만 건낸 채 고개를 훽 돌렸다.
그러더니만 잠시 뒤
껍질 남아 있으면 마저 깎으라며 노룩패스로 칼을 건네 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이 너무 맛있어요!"
역시 쿨한 그녀는 대답조차 없었다.
두 번째 그룹은 할아버지 1인
등산을 다녀오셨나 보다.
가족에게 온 전화일까 친구에게 온 전화일까
분명 물에 빠진 새앙쥐 상태임에도 비 맞아도 괜찮다고 얼마 안온다고 연신 너스레를 떠신다.
아닌 것 같은데...
외로운 뒷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세 번째 그룹은 외국인 3인
한국에 놀러온 친구들과 주말맞이 공원에 소풍온 듯 하다.
미스터피자에서 1인용 피자를 3개 사 왔다. (너무 외국인같아)
비에 쫄딱 젖은 비닐봉지 속 피자박스 3개가 세로로 뉘여 있다
박스 속 찌부러진 눅눅한 피자를 상상했다.
비오는 공원을 맞이한 외국인 3인방의 마음보다 박스 속 피자의 마음이 더 속상할 것 같았다.
외국인 3인은 카카오웨더를 킨다
저녁까지 온다는 예보를 본 걸까? 렛츠 고 투 썸웨어 '인도어'를 속닥인다
용기있는 1인이 원두막을 벗어나 빗속으로 떠나더니 한참 뒤 우산 3개를 사 왔다.
찌부러진 눈눅한 피자는 결국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네 번째 그룹은 아주머니 2인
아는 사람들 얘기로 끝없는 대화가 가능하다
친구 자식 얘기, 사촌 얘기, 친구 얘기, 어머니 얘기...
그들에겐 아마 비가 오래 와도 될 것 같았다
원두막 밖을 내다 보았다.
비 맞으며 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웃고 있었다.
나도 왠지 나가서 비를 맞아도 좋겠다 싶었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출구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운동화 속 양말이 축축해져 발이 시릴 때 쯤 깨달았다.
멀리 편의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뛰어갔다
우산을 하나 사고, 다시 공원 속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비 맞으며 비행 연습을 하는 아기 오리들을 보았다
파파박 물 위를 잠시간 걸어 날갯짓을 했다
물론 못 날았다.
쟤네들도 웃고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