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제주시 조천읍

이집트쌀바라기새 2024. 8. 24. 10:52

1-1
머리 위로 제비들이 나다녔다. 
내용도 모르고 제비가 그려진 책을 한 권 샀다.



1-2
깜깜한 관목 터널을 지나 주황색 코스모스 들을 지났다. 
기척 없는 긴장 아래 모습을 드러낸 아기 노루는 나보다 더 긴장한 듯 보여 괜시리 미안했다.
뺙뺙 소리를 향해 쌍안경을 들이대면 강렬한 눈빛의 유조가 나뭇가지에 턱 걸려 있었다. 



1-3 
잠시간 낙조를 기다렸다. 
빽빽한 숲의 작은 틈은 바닥에 황금색 무늬를 그렸다.  

 

1-4
술 한 병에 현지인에게 여행자임을 들켰다.
만취엔딩. 남은 일정 동안 그 술은 결코 마시지 않았다. 


2-1
바다에 들어가 보자. 
발에 닿는 고운 모래가 찬 숨을 덮어준다. 
투명한 옥색빛의 물이 발목에서 다리에서 배에서 가슴에서 목에서 턱끝까지 서서히 오를 때
발목과 다리와 배와 가슴과 목과 턱끝에 투명한 옥색빛 수면의 간질임이 느껴진다.  
팔을 휘젓고 물장구를 쳐 보자. 내가 어찌 물 위에 떠 있지?



2-2 
예쁜 옷을 차려 입은 채 남기는 사진이 좋다.


2-3 
안전함의 안도감 
천천히 먹고 마시고 읽으며 취해가는 4인용 테이블 
뜨거운 껍질콩을 까면 나오는 반짝이는 연두빛 신뢰
접시에 남은 새우 꼬리 10쪽에 고소한 마요네즈 맛이 느껴진다.  



2-4
홀로 즐거우면 자연스레 몇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먼저 충만해야 하고 이는 나만을 위함일 수 없다.



3-1 
현지인 제보로 아침 일찍 흰 새를 보러 갔다.
중대백로인지 중백로인지 모를 - 노오란 부리와 하이얀 몸은 언제 봐도 신비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키작은 나무 사이 통통한 귀염둥이가 보였다. 검은이마직박구리라고 믿을 거다.  
높은 막대 위의 구구오오 / 빈 건물을 감싸며 춤추는 제비들 / 털 고르는 왜가리 / 귀여워 흰뺨이



3-2 
또 바다에 들어갔다. 나 이제 보조부력 없어도 괜찮아!
 

3-3 
근처에 무화과가 많다. 차갑지 않은 선풍기 바람과 무화과 향에 휩쓸려 제비책을 마저 읽었다. 
간만이었다. 집중의 눈물이 흘렀다. 



3-4 
이번엔 현지인처럼 시킨 술 한 병
따끈한 Romance 앨범의 풀렝스 감상
써내려가는 가을 내 만날 이들의 이름



3-5
한 입에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후토마키
아끼던 마지막 한 점이 풀어져 버렸을 때 
두 입이 되어 한 번 더 먹을 수 있어 좋았고
마지막 한 입이 된 커다란 참치 한 덩이는 최고로 맛있었다. 



 
4-1
아쉬운 마음은 옥상 뷰 바다직박구리가 두 마리가 챙겨주었다. 
이른 아침 물은 더 맑고 멀리 있다.
책을 한 권 더 사러 가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