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후기

[240803]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IPRF 2024 - Day 2

이집트쌀바라기새 2024. 8. 8. 16:20

매 해 그렇다.
덥고 힘드니 둘째날은 천천히 가야지 마음먹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전날의 계획보다 한 시간은 일찍 가게 된다.
의아해하는 친구에게는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 일찍 나오는 거라고 말하지만 
실은 펜타포트가 좋으니까 더워도 그냥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싶은 맘 탓이다. 굳이 보태자면 일찍 가면 맥주 한 잔 더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올 해도 그렇게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시간에 가려고 했는데, 브로큰발렌타인 시간대에 도착했다.
 
이날 낮은 지글지글했다. 존재론적 땀이 흘렀다.
존재론적 땀이란 말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흐르는 땀이다.
아무 짓도 안하는데 온몸 구석구석에서 땀이 흘렀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땀샘의 위치를 파악하는, 나를 알아가는 시간 펜타포트  
 
덥고 땀이 날 때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맥주 마시기"
 

맥주마시기 국룰 맥주샷도 국룰



그렇게 들어오자마자 맥주... 공연 보면서 맥주.... 친구가 와서 맥주...  저녁 먹으면서 맥주...
짧은 시간 동안 맥주를 내리 콸콸 마셨다.
 
결국 걸인레드 공연 때 취기를 못이기고 쿨버스에서 낮잠을 잤다
노르웨이에서 온 20대 친구의 공연 영상이 아주 멋지길래 그 현장감을 느껴보고 싶었으나
당장 몸이 술찜이 되어가는 아찔함은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은 이를 귀감삼아 술을 덜 마셨다
이정도의 더위에는 아무리 펜타라도 절주해야 하는구나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여튼간에 공연 얘기로 돌아오면
브로큰발렌타인은 잠시 봤는데, 알루미늄이었나 관객 호응이 대단했다.
최근 다시 활동을 재개하며 그리웠던 팬들이 많았나 보다.
그 열기를 식히고자 소방차가 물을 왕창 뿌려주고, 팬들은 환호했다.
 

어마어마한 물세례



락페에 오면 내가 즐거운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즐거운 사람들이 왕창 있다는 분위기가 행복감 견인에 크게 작용한다.
물론 최근엔 남 생각 못하고 "혼자만" 즐거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지라 불쾌함도 공존한다만
그래도 아직은 행복감이 더 크다
브로큰 발렌타인의 공연을 뒤에서 보니 그 행복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받은 행복감 안고 이르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를 보러 갔다. 
 
지금껏 구남은 작은 무대에서만 봐 왔는데
공연을 너무 잘 하기에 언젠가 큰 무대에서의 공연을 보고 싶었다. 
 
공연 며칠 전 공식 인스타를 통해서였나? '무언갈 보여주겠다.'는 메세지를 남겼었고 그들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멋진 새빨간 화면을 띄워둔 채 "근-본"의 여름밤으로 시작해 최근 발매한 1969 수록곡들, 빠지면 섭한 사과까지
40분이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신명나게 놀았다. 
 

소행성이 다가온다



공연 도중 관객들이 '어이! 어이!' 외치는 행위에 대해, 최근 곡의 흐름과 맞지 않는 타이밍에 외쳐질 때가 많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만
구남의 공연에서는 계속 어이! 어이!가 나와도 싫지 않았다. 
그 한국적인 추임새가 이들의 공연엔 꽤나 잘 어울렸다.
 
조웅의 대체 불가한 목소리와 기타 톤
한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특유의 멜로디와 리듬은 
역시 전 세계 어딜 내놔도 자랑스러울 무언가다. 

이후 골든맘모스를 보러 써드스테이지로 가고 싶었으나 그곳은 빵빵한 에어콘 이슈로 사람들이 미어터졌기 때문에 빠르게 포기, 그늘을 찾아가 쉬었다.
다섯시쯤 예약했던 밥을 찾아 먹을 때 파란노을 공연이 시작되었다. 

밥 사진... 이게 최선이었을까 자문한다



말로만 듣던 림 최고평점 parannoul이니 궁금은 했다만 라이브가 별로라는 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었었는데
열려있는 귀로 들리는 것 뿐인데도 신경에 거슬리는 수준이었다.
팬이 아닌 이상 굳이 가까이 가서 공연을 볼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밴드음악에 꼭 훌륭한 보컬 역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곡에 해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션이 아무리 캐리를 해도 가려지지 않는 거슬림이었다. 
 
그렇게 질색을 하며 걸인레드로 향했다. 
상큼하고 귀엽고 음악도 좋고 무대매너도 좋고 그치만 나는 점점 술찜이 되어가고 
앞서 언급했듯 꿀잠 자서 기억이 없다. 
 

그래도 사진은 한 장 찍어놨다



비몽사몽 동행들과 만나 쉬다가, 술이 좀 깬 것 같아 Dark Mirror ov Tregedy 무대 앞으로 가 보았다.
DMoT는 과거 온스테이지에서 보고, 저런 심포닉 블랙메탈 밴드가 한국에 있다니, 싶어 기억하고 있던 팀이다.
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고 지금은 보길 잘 했다 싶다
 
사실은 비주얼만 보고 쉬면 되겠다 생각했었는데
강렬한 비주얼은 부차적인 것일 뿐 서정적인 심포닉 음악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장엄하고 웅장하고 존경스러웠다. 
 

개멋있음



공연이 끝나고 언클린 보컬이 아닌 클린한 보컬로 사진한장 찍자고 한국어(!!)를 했는데
그게 모두의 현웃을 터지게 했다 아맞다 이들도 사람이지 한국인이지!
 

기여운 단체사진



이후 타임은 내가 가장 기다리던 라이드였다.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일찍부터 기다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락의 세계로 이끈건 오아시스였고, 라이드의 기타리스트인 앤디 벨은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오아시스라 하면 갤러거 형제가 가장 유명하지만 내겐 앤디도 마음속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이다. 
 
작년에 Nowhere 전곡 플레이 셋으로 펜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앤디의 손가락 부상으로 취소되었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올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앤디도 이를 기억하고 신경이 쓰였었는지, 펜타 라인업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는 작년에 내 잘못으로 못왔었어서 미안하다, 라는 멘트를 해 주었다. 귀여웠다. (?)
 

앤디씨 알라뷰쏘마취



공연은 무아지경이었다. 
유난히 베이스라인이 크게 들렸는데 그게 정신 못차리게 하는 데 한몫 했다. 
Dreams burns down이나 Vapour trail, Leave Them all Behind와 같은 과거의 명곡들을 비롯해 신보의 수록곡들이 이어졌다.
Nowhere 전곡이 아님에 아쉬워할 뻔 했으나 아쉽지 않을 정도로 듣고싶던 곡들을 많이 연주했다.
신곡인 Peace Sign을 할 때는 다같이 피스 싸인을 만들어 브이를 그리는 모습이 아름다워 되려 몇곱절 즐거워졌다. 
 

정중앙 뷰 아주 좋았다
이거 피쓰싸인인데 잘 안보이네



마지막 곡은 Seagull이었는데 아 정말 정신차리기 싫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곡이 진행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데 끝날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이르게 느껴졌다. 
 
소음 속에 살고 싶었다. 
듣기 싫은 소음은 숨을 막히게 하지만 이런 소음은 숨을 쉬게 한다.
숨을 쉬게 하는 건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또 앞날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60분 간 너무 집중을 해서일까 행복함에 비례해서 진이 빠졌다. 다음 잭화이트 공연을 보러 넘어가기 전에 쉬어야만 했다. 
한참을 쉬다가 헤드라이너를 보러 갔다. 

잭화이트의 공연은 명불허전이었다. 
진정한 고수는 히트곡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분명히 잘 모르는 곡들임에도 현란한 기타 연주와 무대를 압도하는 장악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멀리서 보는데도 포스가 대단했다



한 30분쯤 무대를 본 것 같은데 그 사이에 기타를 3대나 바꾸면서 연주했다. (그와중에 기타들도 뭣도 다 까맣고 파랬다는 것이 포인트)
재지한 장르부터, 개러지, 컨트리까지  
기타를 바꿀 때마다 소리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지는게 이리도 확연히 느껴지다니
왜 그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지 어느 누구라도 모를 수 없는 퍼포먼스였다. 
 
세븐네이션스아미는 보고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앵콜이었다고) 체력과 막차 이슈로 이르게 뒤돌아 나왔다.
이미 라이드에서 최고의 감동을 받았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보장된 익숙함에서 비롯된 감탄
새 장르 탐험에서 비롯된 감탄
기대 이상의 울림에서 비롯된 감탄
기술과 멋에서 비롯된 감탄
 
흘린 땀만큼 수많은 감탄이 흐르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