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우린 여기서 어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거냐?
이집트쌀바라기새
2024. 1. 17. 00:37
홍콩에 다녀왔다.
만만한 프렌차이즈 호텔에 머물렀는데
일정을 마치고 호텔방로 귀가하는 엘리베이터에 어려보이는 한국 친구들과 함께 탔다.
다음은 그들의 짧은 대화다.
"야 해외여행에 오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하잖아?"
"그치."
"근데 우린 여기서 어떤 견문을 넓힐 수 있는거냐?"
"ㅋㅋ"
저 질문이 뇌리에 박혔다
견문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보거나 듣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의미한단다.
여행에서는 보거나 들을 거리가 아주 많다.
특히나 해외 여행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들리는 모든 언어가 새롭고,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과 생활상과 나무들이 신기하다.
이를 깨달음과 지식으로 잇는 것이 거창하게 느껴질 순 있겠으나
깨달음이 항상 특별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문득 든 감정과 생각이 깨달음이고
눈이 휘둥그레진 경험이 훗날 포용의 밑거름이 되는 최고의 지식이라 생각한다.
나의 3박 4일간의 견문은 무얼까
(겨우 며칠 간의 감상이라 뇌피셜일 수도 있다.)
- 홍콩 사람들은 독립적이다. 길에도 식당에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연인이나 가족들의 스킨십을 보기도 힘들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군더더기 없이 차가웠다.
- 독립적인 성향은 그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독립을 외치던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우리는 단일 민족을 고집했고 홍콩은 다민족을 포용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 벽안의 백인 키파를 쓴 유대인 짙은 수염의 인도인과 동양인까지 다민족이 섞여 있지만 그 어디서도 인종 차별이 보이지 않았다. 홍콩 사람들의 무심한 독립성의 순기능이라 느껴졌다. 서로를 향한 무심함이 최적의 예의가 될 수도 있다.
-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는 매우 빠르고 대부분 길다. 그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매우 빠르고 대부분 바쁘다. 부딪힘이 없고 정확하다. 생활 양식에서 국민성이 묻어나는 교과서적인 예시였다.
- 우리나라에 와서도 에스컬레이터를 유심히 봤다. 느린 에스컬레이터를 빠르게 타고 싶어 앞다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졌다.
- 홍콩의 거의 모든 건축물에 대나무 비계를 사용한다. 불안한 외형이지만 가볍고 저렴하고 안전한 지혜로운 방법이란다. 생물 모방 이전에 생물 활용이 있음을 잊지 말자.
-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막혀 있는 도시에선 하늘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30분만 벗어나면 높은 지대의 산지가 나오고 이곳의 하늘은 거스름없이 트여 있다. (심지어 나무도 낮아 하늘이 다 내 것 같다!) 높은 곳에 부자들이 산단다. 그들이 하늘마저 더 향유하고 있었다.
-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여러 새들을 봤고 생명의 다채로움을 느꼈다. 목점박이비둘기는 정말 많았고, 시끄러운 흰머리찌르레기나 주황색 엉덩이가 귀여운 붉은귀직박구리도 볼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을 보는건 덜 신기하다.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을 보는게 더 짜릿하다. 새로운 곳에 가면 고개를 들어 나무를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은 그날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장소를 보기 전 그 장소에 있는 화면 속 나를 보고
주변을 듣기 전에 화면 속 추천 정보를 따랐던 게 아니었을지 싶다
여행하기 편하고 자랑하기 쉽지만
견문을 생각하긴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