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9] 검정치마 연말 콘서트 '201 days of holiday' at 예스24라이브홀
최근 경복궁 낙서 사태로 핫해진 검정치마 연말 콘서트에 다녀왔다.
201 앨범이 벌써 15주년이란다. 그 기념으로 201 앨범에 있는 전 곡을 연주하는 전무후무한 콘서트다.
고등학교 때부터 들어온 애정하는 앨범인지라 안갈 수가 없었다.
1집의 전곡 연주라는 파격적 메리트뿐만 아니라
라이브로는 들어보지 못한 사랑하는 곡들을 여러 곡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검정치마의 음악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넓다는 점에 새삼스레 놀랐고,
앨범별 컨셉이 뚜렷해서 앨범 단위로 듣는 맛이 있는 아티스트라는걸, 내가 그래서 좋아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언제부터일까 조휴일씨가 이렇게나 슈퍼스타가 된 건...
한 7년인가 6년 전 TEAM BABY 앨범 나온 후에 공연을 본 적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워낙 앨범 나오는 주기도 길고 공연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어서 그당시 관객들이 더 목말라있었을 것 같은데 흠
내가 모르는 사이 아마 코로나 시기 사이에 검정치마가 힙스터 픽이 되어버린 것 같다
공연에 갔더니 그를 찬양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다.
휴일 특유의 그 어색한 제스쳐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조금은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요즘들어 어느 공연을 가던 드는 생각인 것 같다. 그 공간에 스며들지 못하고 동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하나둘 듦에 따라 다들 이런 생각을 하며 공연장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인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여튼간에 공연은 멋졌다.
악기를 아끼지 않은 구성이 풍족했다. 기타 세 대에(조휴일 포함) 베이스, 드럼, 키보드, 색소폰까지 소리에 빈 공간이 없었다.
특히 관객석 기준 오른쪽에 위치한 기타맨이 하드캐리하셨다. 열정적인 연주가 기막혔다. 어쩌면 촌스러울만큼 정석적으로 잡은 쨍한 기타 사운드였는데, 그 느낌이 검정치마 특유의 레트로함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았다.
조휴일 말에 의하면 이 세션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빵빵 터지는 거대한 기타 사운드를 내고 싶어졌다고. 때문에 teen troubles라는 앨범이 탄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검정치마가 그런 거대한 음악이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보컬이나 카리스마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질감에서 선사하는 묘한 끌림이 있다. 뻔한 것을 좇지 않는 힙스터들의 픽이 된 것이 이런 탓일까 생각해 본다.
공연 내내 조명을 잘 활용했다. 특히 선형의 조명을 활용해서 가로 방향으로 퍼지는 연출을 자주 보였는데, 최근 thirsty와 teen troubles 앨범에서 부각되는 신앙에 빗댄 뉘앙스의 음악과 잘어울렸다.
아 맞다 신앙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니 생각난다. 어린양이라는 곡이 이렇게나 사람들한테 인기있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떼창을 하더라.
그 노래를 신나서 돌아다니며 부르는 조휴일과, 그의 손짓 발짓 눈짓 하나에 소리를 지르는 관객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 신앙 집회 같았다.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사이비교주가 되는 법' (제목이 맞나...)라는 다큐가 생각났다. 외향이 fancy한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을 설득하고 끌어당길 무언가가 있다면 교주가 될 수 있었다. 조휴일에게 어린양이라는 곡이 그 장치같았다. 똑똑하단 생각이 들었다. 팬을 집결시킬 수 있는 곡이었다.

제일 신나고 좋았던 점 건 아무래도 201의 곡들을 할 때였다.
어쩔 수 없는 라떼맨이 되어버린 걸까... 옛날 노래에만 내 몸이 반응을 한다. (서러워)
상아, 아방가르드킴, 디엔테스, 스탠드스틸, 키스앤텔 뭐 다 죽이더라
탱글은 라이브르로 첨들어보는 것 같았는데 라이브로 들으니까 노엘갤러거의 곡 느낌이 나서 놀랐다.
라이브 공연을 볼 때마다 지겹게 느끼는 거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헤드셋을 쓰고 스피커를 써도 실제 공연에서의 느낌은 다르기 마련이다. 뭐든 직접 느껴야 한다.
그리고 공연의 (앵콜 전) 마지막 좋아해줘 - 안티프리즈 - 강아지 3연타
이게 진짜였다. 뭔 로봇과 얼룩말이 같이 나와서 근본없이 춤추는데 보기 좋았다.
강아지를 듣는데 눈물이 고였다. 이게 연말이라 더 울컥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그 가사를 이해 못했던 것 같은데
'모두다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 하기 바쁜데 나는 개 나이로 세살 반이야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아!'
이제는 뼈저리게 이해한다.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다. 현실과의 타협이 아직도 어려운 나는 개 나이로 몇 살일까
앵콜 전 공식적인 마지막 곡인 강아지의 여운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아 앵콜이 너무 많았다. 한 열 곡은 한 것 같은데
색소폰 세션 유투버 '이별대통령'님의 구독자 수를 빌미삼아 연주가 계속되었다. (이별대통령... 그런 컨셉은 어떻게 잡으신 건지요...)
아 그들도 신나고 나도 신나기는 했는데 지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1집 노래는 다 끝나버렸는걸료?
내 뒤에 있던 친구 말로는 맨 마지막 곡에서는 내가 미동이 없었단다. 맞다. 집에 갈 길이 그저 걱정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게스트도 없이 2시간 반을 공연으로 채웠다.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