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이승우 작가의 [이국에서]

이집트쌀바라기새 2023. 11. 6. 20:40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제대로 사라지려면 남들이 나를 지워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게다가 스스로 사라졌다는 감각이 있을 수는 있나 싶고 

 

타의로 사라진 황선호는 잊혀질 미션을 받았지만 자의로 잊혀진 김경호를 찾았다.

파스칼의 원리를 유체뿐 아니라 운명에도 적용되는 듯 

잊혀짐의 압력이 어딘가에 가해지면 다른 어디에서는 그 압력이 드러나기 마련인 것 같다.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

광야를 지나는 이들에게 그 여정은 과연 기꺼이 감내해야 할 푸른 미래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에게 주어진 '만나'는 은총이 아닌

터전을 잃은 자들끼리의 유대와 희망과 생존을 위한 발구르기가 만든 현실의 산물이었을 것 같은데 

 

같은 위치의 이들도 같은 사건에 다른 기억을 가진다. 

그러니 높은 곳에 머무는 자가 상상하는 위협은 머무르지 못하는 자들이 마주하는 두려움에 견줄 수 없을 거다. 

근데 위에 있는 놈들을 이걸 알(려고 할) 리가 없지.

 

자의적 머무름과 타의적 머무름

자의적 떠돎과 타의적 떠돎

나는 무엇을 부여받았나 혹은 선택했나?

 

오늘도 정리할 길 없는 요령부득의 생각만 남아버린 이승우 작가의 소설

이전 작들에 비해 큰 울림은 없으나 잔잔한 떨림이 묘하게 지속된다.